바흐 가족의 사적 삶 알알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는 평생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은 바흐보다 한 살 많은 육촌 누이 마리아 바르바라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전해주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들의 둘째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이 나중에 아버지 전기인 〈고인의 약력〉을 남겼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13년간 ‘충만한 결혼 생활’을 보냈지만… 아내가 타계하는 비통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두 사람의 사이는 좋았을 것으로 짐작 된다. 또 바흐가 마리아 바르바라 타계 무렵 작곡한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여섯 곡에 비통한 악상이 많은 것도 두 사람이 돈독했던 증거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곱 명이나 되는 자식이 태어났다. 도타운 사이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둘째 부인은 바흐보다 무려 열여섯 살 어린 안나 막달레나다. 그녀는 바흐가 쾨텐 궁정의 악장을 지내던 당시 자신의 손으로 뽑은 소프라노 가수였다. 바흐는 첫째 부인이 타계한 지 17개월 만에 이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열한 살부터 다섯 살까지 아직 어린 네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바흐의 많은 악보가 안나 막달레나의 손으로 필사된 걸 보 면 그녀는 명석한 여성이었으며 남편의 믿음직한 조력자였다.
바흐는 둘째 아내를 사랑했다. 라이프치히 시절이던 1740년, 바흐는 조카이자 비서이던 요한 엘리아스를 시켜 글라우하우에서 칸토르로 일하는 요한 게오르크 힐레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홍방울새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 홍방울새는 바흐와 막달레 나의 사랑의 징표가 되었다. 현재 바흐의 고향 아이제나흐에 있는 바흐 박물관이나 궁정 악장을 지냈던 쾨텐의 바흐 기념관을 방문하면 목각으로 정교하게 만든 새장이 벽에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막달레나는 카네이션을 선물 받기도 했다. 바흐는 할레의 프리드리히라는 사람에게 아내가 카네이션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꽃은 막달레나에게 배달되었다. 카네이션을 받은 막달레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음악가 남편과 아내의 음악 일기
꽃이 두 사람의 아기자기했던 삶을 보여주는 소품이라면 〈안나 막달레나 클라비어 소곡집〉 은 음악가 남편과 아내의 음악 일기 같은 것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722년 안나 막달레나는 한 권의 오선지 묶음을 만들었다. 노트에는 남편의 곡이 차례로 기록되었다. ‘프랑스 모음곡’ 초기 버전과 코랄 전주곡 등이다. 내용을 보면 아내가 비록 가수지만 건반악 기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선생님’ 바흐의 의도가 드러난다.
<안나 막달레나 클라비어 소곡집>은 1725년에 한 번 더 만들어진다. 제목을 금색 글씨로 각인하고 테두리에는 금박을 둘렀다. 첫 작품은 바흐가 직접 자신의 작품 ‘파르티타’를 적어 넣었다. 이후로는 막달레나가 곡을 선택하고 악보를 써넣었다. 특별한 순서 없이 채운 곡들로 모음곡, 무곡舞曲 같은 건반 음악과 아리아와 찬송가 등의 성악곡도 포함되었다. 막달레나는 주로 남편의 곡을 골랐지만 아들들의 곡과 다른 작곡가의 음악도 포함시켰다. 첫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빌헬름 프리데만,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도 벌써 작곡이 가능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1740년대에 작곡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수록되었고, 마지막에는 안나 막달레나의 소생인 요한 크리스찬의 첫 작품도 추가되었다. 막달레 나 소곡집은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세월을 보내며 바흐 집안의 음악적 삶을 기록해나갔다.
악보집에는 아름다운 곡이 많지만 우리 귀에 익은 곡은 미뉴에트 ‘BWV Anh. 114-115’ 다. 이 음악의 재즈 버전이 한석규와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접속〉(1997)에 사용돼 우리에게도 친숙한 선율이 되었다. 여성 재즈 가수 사라 본이 부른 ‘A Lover’s Concerto’가 바로 그 곡이다. 내가 소곡집에서 흥미롭게 듣는 음악은 소프라노 성악곡이다. “Willst du dein Herz mir schenken, so fang es heimlichan(당신의 마음을 내게 주고 싶나요, 그러면 비밀스레 시작하세요).” 이 노래를 들으면 바흐가 안나 막달레나에게 청혼하고 막달레나가 얼굴을 붉히며 승낙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안나 막달레나 클라비어 소곡집〉에는 바흐 가족의 사적私的 삶이 알알이 배어 있다. 바흐와 아내 막달레나, 그리고 두 여인의 자식들이 음악과 어우러진다.
writerChoi Jeongdong 기행 작가 · 칼럼니스트
intern editorKang 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