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떠나는 바캉스
책 한 권과 비행기 티켓 한 장으로 완성하는 설레는 휴일.
바위나 땅을 짚으면서 우리의 시각,
저마다의 기대를 안고 어디론가 떠나는 계절. 누군가는 바다나 산으로, 어떤 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떠날 터인데, 그 길에 책 한 권 동행해보자. 낯선 기차역에서 혹은 평안 한 비치 베드에서 읽는 책은 그야말로 새롭고 진기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 길에 함께함직한 책 네 권을 소개한다. 어디 이 네 권뿐이랴. 세상 모든 책이 길을 나설 때 가장 적합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단단한 마음 그리고 걷기
독일의 철학자 알베르트 키츨러의 <철학자의 걷기 수업>은 ‘걷는다’는 일이 얼마나 우리 삶을 풍족하게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걷다 보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고 전한다. 동서양의 현자들은 이구 동성으로 “평온하고 균형 잡힌 마음”이 바로 행복이라고 정의했는데, 걷기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걷기를 즐긴 사상가 중 하나다. 그는 고독하게 산책할 때만 “악의적인 사람들의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고백했다. 다소 급진적인 사상을 주장한 루소는 귀족 출신 계몽 사상가 볼테르 등에게 자주 공격을 받았는데, 그는 그때마다 자연으로 나아갔고 “생동감 넘치는 내면의 만족감”을 느낀 후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물론 루소가 누군가의 공격을 받을 때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걷기 그 자체를 즐겼다. 저자는 걷는 것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삶의 동력을 얻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행복이 외부의 목표 실현 여부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유유히 거닐 때처럼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목표이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정상에 도달하는 것보다 정상에 오르는 길 자체를 더 사랑하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는 대신 때로는 몇 시간에 걸쳐 힘든 길을 걸어간다.”
고대 철학자들은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그 길로 가는 방법으로 걷기만 한 것이 없다고 믿었다. 걷기만큼 단출한 행동이 없고, 비록 단조로운 리듬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변화”를 체득할 수 있 기 때문이다. 그 점진적 변화는 결국 자기의 중심에 가까워지는 경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를 아는 사람만이 스스로에게 장기적으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잘 모르는 곳이라면 스스로 걸어서 길을 찾아야 하듯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존재, 즉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걷기는 그 자양분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저자는 “어딘가를 걷는 일의 즐거움은 목적 없음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매 순간 치열할 수는 없다. 때론 한 발짝 물러나 삶을 살펴야 할 때도 있다. 원대한 목표만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걷기를 통해 단단한 내면을 부여잡는 일이야말로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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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서 얻은 고독의 깊이
프랑스 작가 실뱅 테송의 <시베리아의 숲에서>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북쪽 삼나무 숲에 지은 오두막에서 은거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겨울에는 평균기온 영하 30℃에 이르고, 여름에는 곰들이 어슬렁거리는 곳에서 그는 완전한 고독과 마주하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다. 차도 없는 생활이었고, 슈퍼 마켓도 있을리 없으니 낚시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보일러는 언감생심, 추위를 견디려면 매일 장작도 패야 했다. TV 없는 삶은 책을 가까이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고독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2011년 프랑스 메디치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을 프랑스의 그림 작가 비르질 뒤뢰이가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시켜 생동감이 남다른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문학 30년의 풍경
문학 전문 기자 최재봉의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그 자신의 말처럼 “지난 30년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증언이자 발언이고, 추억”을 담은 책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은 어떤 지형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여러 작가와 작품론은 물론 표절 문제와 노벨 문학상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충실히 녹아 있다. <난장이 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긴 조세희 작가와 한국문학계의 “따사로운 어른”이었던 박완서 선생 등 작가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최은영, 김초엽 등 근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의 작품까지 두루 애정과 비평 사이를 오간다. 박경리, 박완서 등의 부고 기사는 한 시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엄숙한 문학적 풍경이라 할 만하다.
성장소설로 읽는 우주와 과학의 원리
덴마크 작가 게르트루데 킬의 <별을 읽는 시간>은 한 소년이 우주와 과학을 이해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성장소설이다. 지동설부터 중력, 상대성이론까지 과학사를 일별할 수 있어 청소년은 물론 성인도 읽는 재미가 남다른 책이다. 여름 방학을 괴짜 이모할머니 집에서 보내게 된 윌리엄은 우연히 다락에서 망원경 렌즈를 발견한다. 이내 시작된 할머니와의 대화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 등 위대한 과학자 10인의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괴짜 이모할머니는 “창밖에 무엇이 보이니?” 같은 평범한 질문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그것에 연관된 우주와 과학의 원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writer Jang Dongsuk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intern editor Kang Juhee
photographer Ryu Hos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