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행하는 운동 중 걷는 것은 가장 느린,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동일 것이다. 실제로 로빈이 사막에서 만난 한 남자는 오토바이를 몰고 와 그녀보다 빨리 인도양에 도착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걸어야만 천천히 그 모든 풍경 속에 흘러 들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경비행기 등 모든 탈것은 속도를 제물 삼아 인간 정신의 일부를 온전히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 어떤 기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로빈은 그저 걷는다. 신이 내려주신 육체란 기계만 이용해서. 아주 천천히.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마침내 오지의 심장까지 다다르자, 그녀는 비로소 오랫동안 억압해둔 자신의 외로움을, 우물처럼 깊은 심연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로빈의 아버지는 서아프리카에서 금도 찾고 사냥도 하는 모험가였는데, 11세에 그녀의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살을 한다. 그후 그녀는 고모 손에 양육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장 지독한 아픔은 어머니와의 사별보다 어린 그녀와 기꺼이 교감한 개 골디와의 이별이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로빈을 보내면서 골디를 안락사시켰다. 그녀에게 이러한 트라우마는 여행 내내 함께한 반려견 디기티가 백인들이 푼 독을 먹고 죽자, 상처가 덧나듯 다시 심해진다. 바싹 마른 땅. 끊임없이 엄습하는 갈증. 아침마다 깨워준 시계의 고장. 완전히 터져 익어버린 피부. 아버지의 나침반을 잃어버렸다 되찾은 것. 몰려드는 기자들.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지만, 디기티를 떠나보낸 후, 이별은 그녀를 사막에 주저앉혀버린다.
파리 떼가 몰려와 달라붙는 고깃덩어리로 변한 디기티. 피가 낭자한 호주의 흙길. 골디와 헤어진 그날처럼. 크고 검은 뱀이 그녀의 목에 똬리를 틀다가 사라져버린다. <트랙>에서 가장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일 것이다. 로빈은 명징한 죽음과 대면한다. 이 지경이 되자 그녀 눈에 사막의 낙타들이 환영처럼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기자들이 또다시 몰려든다. 일주일 동안 찾아 헤맸다는 릭에게 로빈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릭, 나 너무 외로워요.”
이 한마디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녀는 1천7백 마일을 걸었다. 이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관객은 이해할 것이다. 이 단어들의 무게를. 영화 <트랙>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시적이다. 로빈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모든 길에 심중의 말을 던져, 더욱 단단해지는 자기 확신의 선물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이때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고독력(고독을 견디는 힘)’으로 변화한다. 느리지만 감상을 제거하고 남은 한 여자의 그림자에 침잠하는 내 발걸음을 기꺼이 겹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