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경의선의 기적 소리
2020/12 • ISSUE 31
writerChoi Jeongdong 〈중앙일보〉 기자
2013년 8월 루체른에서 열린 아바도의 마지막 콘서트를 수록한 브루크너 9번 교향곡 음반.
QR코드를 통해 2악장을 감상할 수 있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는 한국 음악 애호가들에게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그의 내한 공연이 문제였다. 이제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이야기는 음악 애호가 정관호의 에세이집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1973년 아바도는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첫 내한 공연을 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이 없던 시절이라 공연은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렸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이 흐르던 순간, 기적 소리가 공연장에 빠아앙~ 하고 울려 퍼졌다. 서울역과 문산을 오가던 경의선 기차가 신촌역을 통과하며 기적을 울린 것이다. 지금은 복개를 해서 보이지 않지만 과거엔 교문을 통과하면 이화교를 건너며 발아래 지나는 경의선 완행열차를 볼 수 있었다. 이대생들은 다리를 건널 때 기차 꼬리를 밟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며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철길이 그렇게 훤히 드러나 있었으니 교문에서 지척인 대극장까지 기적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 것이다.
1989년 베를린 필 지휘자 카라얀이 타계했을 때 독일 신문은 주먹만 한 활자로 제목을 뽑았다. ‘Karajan, Der König Ist Tot(카라얀, 제왕이 죽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제왕’은 단원들과 막장 수준의 싸움을 벌였다.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의 영입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나치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고 반발했다. 카라얀이 죽은 지 여섯 달 뒤 베를린 필은 1백7년 역사상 처음 전 단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새 지휘자를 뽑았다. 결과는 아바도였다. 베를린 필 단원들은 더 이상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을 원치 않았다.
아바도가 베를린 필에 있는 동안 나는 그의 음반을 거의 사지 않았다. 베를린 필 취임 연주인 말러 교향곡 1번,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 정도만 가끔 들었다. 한국 청중을 무시한 지휘자의 연주를 굳이 들을 이유는 없었다. 최근 들어 루체른 페스티벌 영상물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아바도는 위암 수술 후 베를린 필에서 물러나 2003년부터 루체른 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매년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이것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 위장을 잘라내 깡마르고 늙은 아바도는 허청거리며 지휘봉을 흔든다. 그러나 음악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그는 할아버지 미소로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단원들은 평생 인연을 맺어온 독주자들인데, 카라얀 시절 베를린 필 단원들이 총궐기하는 원인을 제공한 자비네 마이어도 아바도 앞에 앉아 열심히 클라리넷을 분다. 다툼은 사라지고 예술적 즐거움만 남은 풍경이다.
베를린 필 지휘자가 되었을 때 아바도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내 삶과 음악에서 그것을 이루고 싶다.” 내가 보기에 아바도는 루체른 시절에 이르러서야 그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마에스트로가 떠난 뒤에야 그가 남긴 값진 유산을 접하게 됐다. 그래도 그를 ‘경의선의 기적 소리’로만 기억하지 않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