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푸게이롤
먼지로 만든 그림
2021/04 • ISSUE 35
editorKim Jihye
writerJeon Hyogyoung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푸게이롤은 이브 클랭Yves Klein의 표현 방식이 작품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감이 된다고 말했다. 1960년 이브 클랭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여성 퍼포머를 초대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때 그는 이 여성 퍼포머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갤러리의 벽과 바닥에 큰 종이를 설치한 후, 퍼포머의 몸에 물감을 바르고 움직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또 그는 바람과 비, 먼지의 작용을 포착하기 위해 자신의 차 위에 캔버스를 펼친 작업으로 유명한데, 이는 역사적으로 붓을 사용하지 않고 회화 작품을 만든 주요 사례로 남았다.
시간을 기록하는 회화
푸게이롤의 작품은 이브 클랭의 액션 페인팅을 닮았다. 그도 자연의 현상과 변화 자체를 재료로 삼아 작품을 만든다. 특히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작업실은 푸게이롤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브루클린과 파리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하는 푸게이롤은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에게는 매일 작업실 안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이 작업의 재료가 된다.
예를 들어 푸게이롤은 일차적으로 작업실 안의 작은 먼지나 조각을 진공청소기로 모은다. 말하자면 바닥에 있는 먼지를 청소하는 것이다. 이후 제소를 칠한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진공청소기로 모은 먼지와 조각난 물질을 그 위에 흩뿌린다. 이 물질들은 아직 굳지 않은 물감에 잠기기도 하고 부조처럼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기도 하는데, 작가가 평평하게 뉘어놓았던 캔버스를 바로 세우면 위에 얹은 물질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깨진 물감 덩어리, 유리 조각, 죽은 벌레, 스테이플러 심, 빗물처럼 흥미로울 것 없는 물질들이 꾸덕한 캔버스 위에 반쯤 잠겨 흘러내리다 화석처럼 천천히 굳을 때, 흐르던 시간도 점차 멎는다. 그가 작업을 하기 위해 쌓은 시간은 작품의 재료가 되고, 작품의 표면에는 또 다른 시간이 쌓인다. 푸게이롤에게 회화는 시간의 기록이다.
자연이 만드는 회화
푸게이롤의 캔버스 표면에는 중력의 작용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가 빗물의 작용을 재료로 삼은 작품이나, 스프레이 혹은 액체를 얹은 파편, 먼지가 함께 굳은 것을 볼 때 그렇다. 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흑백 작업에서 이러한 힘의 분배와 대조는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물감을 사용할 때 여러 색을 사용하기보다 바탕으로 한두 가지 색을 입힌 후 다른 재료를 덧대는데, 그의 색들은 흙이나 노을처럼 자연을 닮았다. 이런 표면에 사진을 찍듯 에너지의 움직임을 포착해, 빗물과 같은 중력의 작용이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인 것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든다. 그가 여느 회화 작가들과 가장 구별되는 점은 캔버스 위의 구성을 계획하거나 컨트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붓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붓질을 할 때마다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우연이 개입하게 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푸게이롤에게 매일의 삶은, 영감으로 다가오기보다 그 자체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기회이자 창이다. 그는 이 변화의 순간을 보다 확실하고 또렷하게 의식하고자 한다."
그는 이렇게 에너지의 자취를 컨트롤하려 애쓰기보다는 우연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에너지가 만들었을 예측하지 못한 변화를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푸게이롤은 이러한 방식의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한다. 표면의 액체가 모두 고체가 되면, 그 위에 멈춘 시간의 변화를 한자리에 늘어놓는다. 그런 다음 그 중 원하는 부분을 선택해 캔버스 틀에 씌우면서 편집 과정을 거쳐 그림을 완성한다.
먼지, 우주의 메타포
먼지를 모아 표면에 얹을 때 푸게이롤은 그림에서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데, 에너지가 이동한 자취는 그대로 남는다. 이것은 푸게이롤이 작품에 쓴 먼지와 여러 재료를 자신이 한 행위의 자취로 여기기 때문이다. 푸게이롤의 작품 표면은 모노크롬 회화의 추상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그 표면은 우주의 하늘을 닮은 듯도 하고, 행성의 지각을 닮은 듯도 하다. 그의 작품은 형태적으로 우주의 형상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일상이 남긴 잔여물과 자연의 작용을 재료로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사실’을 담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푸게이롤은 이렇게 작업실에서 목격한 자연현상과 자신의 행적을 보여주는 실마리로 먼지에 집중한다. 먼지는 우주의 일부이자 몸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으로, 푸게이롤은 가장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는 재료에서 존재의 실마리를 목도한다. 그가 먼지로 만든 그림에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실존적 질문이 서서히 드러난다.
푸게이롤은 매일의 삶에서 어제와는 다르게 인지한 것을 포착하고 이를 느린 속도로 기록한다. 그에게 매일의 삶은 영감으로 다가오기보다 그 자체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기회이자 창이다. 그는 이 변화의 순간을 보다 확실하고 또렷하게 의식하고자 한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예술이 완성되는 방식이 라고 말한다.
토마스 푸게이롤 Thomas Fougeirol
토마스 푸게이롤(1965~)의 작업은 회화, 사진 등의 매체를 통해 부재와
실존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신체의 미묘한 함축적 의미, 인간의 존재를 화두로 삼으며 인간의 흔적과 움직임을 추상화로 구현한다.
퐁피두 센터, 무사 드 보자르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