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에 ‘진심’인 그들이 만나
이름은 Santa Claus, 프로필 이미지는 에스파의 카리나.
지난 연말, 신세계백화점의 인스타그램 계정(@Only_Shinsegae)이 바뀌었다.
“와, 해킹이라니...” 이렇게 시작된 댓글은 점차 크리스마스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불러왔다.
신세계백화점과 돌고래유괴단 대표 신우석이 크리스마스 캠페인을 협업하며 바라던 바다.
이맘때쯤 신세계백화점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흔히 등장한다. ‘연말에 진심’. 그도 그럴 것이 신세계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가 선사하는 크리스마스 시즌 영상은 본점 일대의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 비주얼과 3백70여 만 개의 LED 칩같은 탄탄한 기술력으로 매해 업데이트되었고, 어느덧 겨울이면 꼭 들러야 할 명소가 되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감각적이고도 감동적인 방식으로 자극했다.
새해를 앞둔 홀리데이 시즌, 신세계백화점은 93년 만에 외벽을 교체하는 신세계스퀘어의 시작을 알렸다. 올해는 어떤 볼거리가 나올까, 기대가 차오르던 2024년 11월 말, 난데없이 백화점 인스타그램이 바뀌었다. ‘시나브로’, ‘어려웁습니다’. 시간을 거스르고, 번역기를 돌려 한글을 쓰는 듯한 어색한 문법과 말투의 글과 함께 올라온 것은 저화질의 산타 클로스 사진. 기존과는 결이 다른 포스팅에 당황스러운 한편, B급 감성의 이 산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올라오는 포스팅을 지켜보니 경쟁사 백화점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는가 하면, 어느 날엔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즐기고, 인생 네 컷 사진을 올린다.
신세계백화점을 즐겨 방문한 이들이라면 이쯤에서 마케팅 요소를 눈치챘을 것이다. 역시나 12월 1일이 되니 산타는 ‘HELLO, NEW SANTA’ 첫 번째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을 시작으로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선물을 배달하기 위해 등장, “제가 또 배달을 기가 맥히게 합니다”라고 댓글을 달며 팔로어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각자 소원을 말하거나, 산타의 안부를 묻거나, 티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등 팔로어들은 캠페인에 동화되어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따뜻한 난로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연말을 기대하는 흔한 장면 대신, 지금 대중의 모습과 설렘과 기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있는 그대로’의 장면. 인스타그램부터 신세계스퀘어 캠페인 영상까지, 이번 신세계백화점 크리스마스 캠페인을 총지휘한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Q 최근 신세계백화점 크리스마스 캠페인이 큰 화제가 되었죠. 크리스마스, 신세계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 카리나, 돌고래유괴단까지 캠페인을 구성하는 주요 키워드만 보아도 기대감이 컸을 법해요.
A 무엇보다 저는 미디어 파사드라는 장치가 참 홍미로웠어요. 사실 외국에서는 홀리데이 시즌만을 위한 광고가 많이 나오는 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꼭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한국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해보면 명동 거리와 신세계의 미디어 파사드부터 떠오르더라고요. 어차피 언젠가 홀리데이 시즌 캠페인을 만들 거라면 이번이 좋은기회일 것 같다, 신세계스퀘어라는 공간이라면 멋진 홀리데이 캠페인을 만들 수 있겠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Q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카리나를 떠올린 이유는요?
A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시기에 거리를 걷다가 성수동 버스쉘터에 걸린 카리나의 인쇄 광고를 봤어요. 당시 저는 전통적 캐릭터인 산타를 어떻게 풀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썰매를 타고 내려오던 산타가 갑자기 트럭에 치인다, 돌돌돌… 도로 위에 나뒹구는 산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는데, 아무도 산타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지 않을 것 같아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컴컴한 병실, 혼수상태에 빠진 산타를 지켜보는 의문의 여인. 그럼 이 여인이 선물을 배달하는 것으로 하자. 기존 산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기까지 구상했을 때 카리나의 광고가 눈에 들어온 거였어요. 꽤 타이트하게 잡힌 광고 속 카리나의 이미지를 보니 사슴(루돌프)과 매칭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그 순간 새로운 산타가 루돌프라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방향을 전환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루돌프야말로 우리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이야기였으니까요. 루돌프가 지역에 국한되는 소재가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Q SNS를 활용한 점도 흥미로웠어요.
A 그쵸. 신세계백화점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마음대로 바꾼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돼죠.(웃음) 그런데 제 스타일이 워낙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하기도 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번에도 확신이 드는 부분을 강력히 어필했어요. 아무래도 신세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오랜 역사 속에서 대중에게 각인된 ‘고급스럽고 점잖은’ 이미지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SNS가 그 반대로 나아가야 잘될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어요. 어느 날 이름도 ‘산타 클로스’로 바뀌고, 팔로잉 리스트에는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떡하니 있고…. 게시물도 일부러 ‘할아버지’가 전혀 꾸미지 않고 올리는 느낌을 원했어요. 그 외에 10분 길이의 크리스마스 필름을 제작하고, 8개의 숏 버전도 만들고, 프로젝트의 큰 부분부터 작은 부분까지 다 노림수와 계획이 있었어요.(웃음)
Q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중과 호흡했죠. 포스팅을 올리고 난 뒤 오글거려서 후회했다거나, 인상적인 코멘트가 있나요?
A 어떠한 형태든 반응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 평가는 관객의 몫이죠. 단,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최대치로 구현한 뒤에요. 저는 관객이 존재하기에 감독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 그 거리에 대해 항상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영상이라는 매체를 빌려 말하는 게 좋기도 하죠. 내가 기획한 것을 최대한 구현한 뒤 관객 앞에 내놓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전 오글거린 적은 없어요. 남들보다 친절하게 표현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Q 캠페인의 스토리가 감독님의 상상에서 비롯된 걸 보아도 그렇고, 상상력이 풍부한 성향 같아요.
A 네. 보통 장래 희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자라잖아요. 저는 감독이든, 소설가든, 만화가든, 무언가 직접 창작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 과정에서도 시나리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감독이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스토리로 전달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자기 손해거든요. 지인인 만화가 김보통 작가나 이말년 작가를 봐도 자신의 시야를 분명히 드러내는 사람들이죠.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일본 만화 작가 네 분이 있는데, 모두 자신만의 시각이 뚜렷해요. 이노우에 다케히코, 우라사와 나오키, 후루야 미노루. 어! 그런데 한 분은 이제 이 라인에서 제외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지금 들어요. 항상 이 세 분과 견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처음으로 아닌데…? 싶은데요.
창밖엔 눈이 내리고, 단란한 분위기에서 온 가족이 식사를 하거나 난로 앞에서 선물을 풀거나.
모두가 아는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벗어나면 크리스마스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겠더라고요.
Q 신선한 상상력에 기반한 접근법, 관객과의 적정 거리 등의 요소는 돌고래유괴단의 정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A 어떻게 보면 돌고래유괴단은 ‘섬’ 같다는 생각을 해요. 외딴 섬. 애초에 돌고래유괴단을 시작할 때도 업계 인맥이나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경쟁력이 생기고 작품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이너서클과의 경계를 유지하고 있고, 오로지 프로젝트의 성패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물론 우리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저희는 수많은 도전을 경험으로 체득했고, 그래서 던질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다른 외적인 요소보다 우리만의 색깔과 해법이 깃든 퍼포먼스, 그 결과물로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후배들도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비유하자면, 옛날엔 어쩔 수 없이 섬에 있었는데, 이제는 섬이 번성해서 사람 들이 놀러 오는 형국이 된 것 같은 느낌? 지금 신세계는 섬에 있는 거예요.(웃음)
Q 지금의 신우석도 비슷해 보여요. 누군가에겐 힙스터라고 보일 수 있겠지만, 정작 본인은 힙스터라고 불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아요.
A 개인적으로 힙스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고 물어 보면 그들이 가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요. 최근에 부대표와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순간순간의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정답이 아니더라고요, 어쩌면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단순히 뻔한 이야기는 아닌 게, 지금까지도 주변을 보며 실감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력이 아닌 유행과 처세로 장식하는 가짜는 무너져요. 잘되고 흥할 때 얼마만큼 번성하든 한계는 명확하더라고요. 반면 한 발 한 발, 다른 욕심과 목적 없이 작품을 잘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게 애티튜드가 되고 평가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결국 ‘빨리’보다 ‘진짜’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살아남아요. 전 그래서 젊은 친구들에 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쿵! 쳤다) 꼭 ‘진짜’의 방식으로 살아가라고.
editor Kim Minhyung
photographer Shin Yoona
stylist Yoon Sung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