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은 세상의 모든 것
20세기 초, 사진 예술의 흐름 속에서 독자적 시선을 구축한 이모젠 커닝햄.
풍경과 인물 등 다양한 피사체를 정제된 감각으로 담아낸 그의 작품은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은 70여 년 동안 인물 사진부터 정물, 풍경, 식물, 거리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방대한 작품을 남긴 미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남성 사진가들이 주도하던 당시 그녀는 미국 초기 사진사에 기여한 소수의 여성 작가 중 한 명이 었다.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사회적 풍경을 담거나 강렬한 개인사로 주목을 끌지 않는 한 여성 사진가의 이름이 후대에 전해지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22년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미술관은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녀의 전 작업을 세계에 소개했다.
이는 커닝햄을 동시대 남성 사진작가들과 동등하게 바라보고,
20세기 세계 사진사에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하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현대적 조형성을 담아내기까지
이모젠 커닝햄은 1915년 동료 예술가였던 로이 패트리지와 결혼했는데, 작가로서 그녀의 활동이 왕성해질수록 부부 사이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녀는 세 아들의 어머니인 동시에 사진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창작 활동을 해나갔고, 남편과 이혼한 뒤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전업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그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1920년대 식물 사진은 당시 아이들을 돌보며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정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속에서도 그녀는 일상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작업하는 동안 자율적으로 놀거나 집안일을 도왔다.
그녀의 집은 언제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창작을 나누는 교류 공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커닝햄이 재직했던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은 미국에서 최초로 사진과가 생긴 예술 학교다.
서부 풍경 사진의 대가 안셀 애덤스Ansel Adams가 초기 학장이었고,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등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사진가들이 모이는 서부 사진의 메카가 된다. 이들이 함께 결성한 그룹 F/64는 순수 사진을 지향한 현대 사진의 중요한 시발점이다.
F/64라는 이름은 대형 카메라의 가장 작은 조리개 값에서 따온 것으로, 최대한의 초점 심도와 선명한 디테일을 추구하는 사진 철학을 상징한다. F/64는 사진만의 예술 형식을 확립하려 했고, 존 시스템
Zone System이라는 체계적 인화 방식을 도입했다. 커닝햄은 이 그룹의 유일한 여성 창립 멤버로서 예술적 영감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의 초기 사진에서 낭만적인 회화주의 사진이 주는 시적 감성을 볼 수 있다면, 그 이후 작업에서는 점차 또렷해지는 시각을 통해 피사체를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그녀만의 현대적 조형성을 만날 수 있다.
커닝햄은 정갈하고 완벽한 형식을 통해 소재를 가리지 않고 그 본질을 사진에 담아냈다.
시간의 흔적과 사라지는 존재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담겨 있다.
여성 사진가의 가능성을 확장하다
커닝햄은 자신의 경력 내내 여성 사진가들의 성장을 적극 도왔다. 1913년, 그녀는 <여성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사진>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사진 촬영과 현상 과정은 신체적으로 고된작업이었지만,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를 수행할 능력이 있으며,
두 성별은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가치 있는 예술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이 선언문에서 밝힌다.
커닝햄은 샌프란시스코 여성 예술가 협회에 가입해 후배 예술가들에게 정신적 지원을 제공하고 멘토 역할을 해나갔다.
커닝햄은 여성 예술가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중 전설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와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의 사진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눈을 감고 몸을 비틀며 마치 내면의 깊은 순간에 몰입한 듯한 그레이엄의 모습은 비평가들로부터 관능적 아름다움이 돋보인다는
찬사를 받았다. 섬세한 철사 조각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루스 아사와 Ruth Asawa와 돈독한 교류를 통해 완성한 사진들 또한
커닝햄의 중요한 작업으로 남아 있다. 그녀가 촬영한 고유한 인물 사진 속에서 유독 인상적인 작가의 자화상이 시기별로 여러 장 눈에 띈다.
초원에서 꿈꾸듯 알몸으로 누워 있는 사진, 사진기를 들고 세월에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사진,
젊은 모델과 함께 있는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위트 있게 보여주는 사진,
거리에 비친 사진기를 들고 있는 자신을 가감 없이 바라보는 사진에서 그녀는 끝까지 당당하고 용감한 여성,
인간 그리고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IMOGEN CUNNINGHAM
하우스오브신세계 메자닌 분더샵에서 사진작가 이모젠 커닝햄의 흑백사진을 통해 조형적 미학을 탐색하는 전시가 열린다.
일시 9월 28일(일)까지 장소 하우스오브신세계 메자닌 분더샵
존재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진처럼
강렬한 서부의 햇빛이 내리쬐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빛에 노출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촬영한다.” 일상의 사물, 강렬한 인물 사진,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만드는 식물 사진,
실험적인 추상 사진과 훔친 거리 풍경 등 커닝 햄은 정갈하고 완벽한 형식을 통해 소재를 가리지 않고 그 본질을 사진에 담아냈다.
90대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은 그녀의 마지막 시리즈 ‘애프터 나인티After Ninety’에는 노년의 얼굴 속 주름과 반점,
시간의 흔적과 사라지는 존재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이모젠 커닝햄은 주체적 여성으로 당당히 사는 법과 사진가로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만들고,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사진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담아내는 예술가로서 홀로 빛나던 큰 별이다.
ARTIST PROFILE
이모젠 커닝햄
IMOGEN CUNNINGHAM, 1883~1976
미국 포틀랜드 출신의 사진가로 사진 매체 고유의 정밀성과 미학을 결합한 독자적 비전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미국 포틀랜드 출신의 사진가로 사진 매체 고유의 정
밀성과 미학을 결합한 독자적 비전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