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하우스의 노하우와 장인 정신, 마르지 않는 상상력을 집약하며 예술로서의 패션을 노래하는 오뜨 꾸뛰르 컬렉션이 2023년 S/S 시즌을 맞아 더욱 화려하게 파리를 물들였다.
1. 다양한 동물 모티브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샤넬.
2. 스키아파렐리 2023년 S/S 오뜨 꾸뛰르 컬렉션 드로잉 이미지.하우스의 유산에서 찾은 아름다운 우화
Chanel
동물에서 힌트를 얻은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를 찾아보는 건 매 시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3년 S/S 오뜨 꾸뛰르에서는 샤넬 컬렉션이 대표적이었다. 파리 깡봉가 31번지에 위치한 가브리엘 샤넬 아파트. 거기에 있는 우화집과 조각에서 모티브를 찾았다는 사실은 샤넬의 오뜨 꾸뛰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고양이와 토끼, 사슴, 제비 등이 트위드 재킷과 코트, 드레스를 장식하며 샤넬 하우스와 가브리엘 샤넬의 동물 사랑을 드러낸 것. 이 모티브들은 하우스를 상징하는 꽃인 카멜리아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마치 한 편의 우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티스트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이 나무와 크래프트지를 비롯한 종이를 사용해 만든 11가지 커다란 동물 오브제 사이로 워킹하는 모델의 모습은 대규모 축제 퍼레이드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냈다. 이는 버지니 비아르가 군악대에서도 컬렉션의 힌트를 얻었기 때문. 망토와 더블브레스트 재킷, 턱시도 셔츠 등 유니폼 모티브와 가볍고 섬세한 디테일의 만남은 그녀가 추구하는 편안함과 우아함의 미학을 두루 반영한다.
Schiaparelli
한편 스키아파렐리는 동물에 대한 더욱 파격적 접근 방식을 택했다. 곤충과 동물에서 영감 받아 기발한 상상력을 패션으로 표현한 1920~1940년대 엘사 스키아파렐리를 소환한 듯 사자와 늑대, 표범을 본뜬 드레스를 선보인 것. 샬롬 할로의 가슴에서 표범이 뛰쳐나왔고, 나오미 캠벨의 코트에서 늑대가 우리를 응시했으며, 이리나 샤크의 어깨에서 사자가 포효했다. 자개와 나무 등 독특한 소재와 간결하고 아름다운 실루엣, 디자이너의 창의력과 하우스의 아카이브라는 네 박자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이번 컬렉션이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뜨겁게 달궜음은 물론이다. 동물 드레스는 페이크 퍼 등을 통해 제작했음에도 학대라는 비난을 피할 순 없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더욱 주목받는 브랜드가 되며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부활을 알렸다.
1. 부드러운 소재가 돋보이는 펜디의 2023 S/S 오뜨 꾸뛰르 컬렉션 백스테이지.
2,3. 장 폴 고티에의 2023 S/S 오뜨 꾸뛰르 컬렉션은 게스트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의 지휘 아래 탄생했다.이 세상 모든 여성을 위해
Fendi
패션 하우스들의 영원한 영감의 원천, 여성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두 브랜드가 있다. 바로 펜디와 장 폴 고티에가 그 주인공.
먼저 “꾸뛰르의 기법과 공예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펜디의 꾸뛰르 및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의 말처럼,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펜디의 오뜨 꾸뛰르는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유려하며, 섬세했다. 그는 아카이브를 파헤쳐 실크 드레스에 대한 칼 라거펠트의 노하우를 익혔고, 고대 로마의 조각상에서 보이는 여신 드레스의 드레이프를 신중하게 재해석했다. 결국 가장자리를 레이스로 장식한 실크 브라와 슬립을 레이어드한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이는 내면세계를 외부로 표출하는 일종의 비유로서 언더웨어를 이브닝웨어로 적절하게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언더웨어라는 특수성을 표현하기 위해 레이스와 실크 등 가볍고 여린 소재를 적극 활용했고, 이와 반대로 가죽과 컷아웃 디테일, 메탈 등 강인한 요소를 곳곳에 배치하는 영민함도 발휘했다. 그 결과 부드러움과 섬세함, 유연함이 더욱 강조된 룩을 만날 수 있다.
Jean Paul Gaultier
또 다른 주인공인 장 폴 고티에 하우스는 지난 2020년 은퇴를 선언한 장 폴 고티에 대신 게스트 디자이너를 초빙하고 꾸뛰르를 통해 브랜드 아카이브를 재해석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 발망의 올리비에 루스탱 등이 거쳐간 이 자리의 네 번째 타자는 바로 하이더 아커만. “고티에가 지녔던 유머 감각은 나에겐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여성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라고 말한 그는 오뜨 꾸뛰르의 시선을 ‘쇼’가 아닌 ‘옷’으로 돌리고자 노력했다. 한 치의 실수도 없는 테일러링과 방금 막 가위질을 끝낸 듯 바삭한 커팅, 마술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컬러 배치 등이 그것. 이상적인 신체 굴곡과 프로포션을 보여주는 실루엣으로 여성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한 것은 물론이고 이란에서 있었던 여성 인권 시위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이란의 가수 셰르빈 하지푸르의 노래를 선곡하고, 프랑스어로 자유를 뜻하는 단어 ‘리베르테Liberte’ 를 프린트하는 등 전 세계 여성에게 보내는 응원과 존경의 메시지도 확인할 수 있다.
1,2. 클럽이라는 재미있는 주제를 적용, 화려함을 가득 담아낸 발렌티노의 2023 S/S 오뜨 꾸뛰르 컬렉션과 무드보드.
화려한 축제의 순간을 위해 노력하다
Valentino
끝없는 상상력으로 이뤄낸 초현실적인 판타지. 이것이야말로 오뜨 꾸뛰르를 가장 명확히 표현하는 수식어가 아닐까? 패션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잔치라 여겨지는 꾸뛰르 특유의 판타지를 제대로 보여준 브랜드를 꼽자면 메종 발렌티노와 조르지오 아르마니다.
발렌티노는 “꾸뛰르란 독특하고 독창적인 자유와 환상을 실현하는 하나의 영역이자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라 말했는데, 이를 위해 메종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클럽’이라는 콘셉트를 도입했다. 그의 인스피레이션 보드는 1980년대 클럽과 당시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사진 등으로 가득했는데, 꾸뛰르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른 세계의 문화를 접목함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움을 창조하고자 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당시 그곳은 젠더의 안식처였습니다. 그때는 그들이 닫힌 문 뒤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요. 지금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 방문할 수 있고 환영받을 수 있는, 바로 오늘날의 자유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그 결과 네온 컬러를 입은 벌룬 드레스, 사랑스러운 리본으로 장식한 매니시 슈트 등 즐거움과 화려함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더욱 대담한 룩이 탄생했음은 물론이다. 한편 패션쇼에 사용된 소재들은 순환 경제와 환경을 위해 예술가와 학생들이 한 번 더 사용할 예정. 이는 프랑스의 비영리 협회 라 레제브 데 자트La Re´serve des Arts와 협력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쇼에 사용된 475m2의 런웨이 카펫, 커튼 및 텍스타일에 두 번째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Giorgio Armani Privé
조르지오 아르마니 역시 꾸뛰르 컬렉션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를 통해 환상적 축제의 서막을 알려왔다. 77벌의 꾸뛰르 피스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테마는 프리즘으로, 빛으로 가득한 눈부신 판타지 세계를 표현했다. 테마에서 알 수 있듯 마치 다이아몬드에 반사된 빛과 같은 반짝임이 컬렉션을 뒤덮으며 꾸뛰르적 순간을 완성했다. 재킷에는 크리스털로 자수를 놓거나 메탈릭 레더를 이용해 마름모꼴 패턴을 패치워크했고, 피에로 러프가 달린 파자마를 장난스럽게 매치했다. 이는 할리퀸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전통적인 할리퀸의 화려한 컬러 대신 워터리 그린, 페일 블루, 골드 등 베네치아 궁전의 로코코 스타일 인테리어와 컬러를 선택해 한층 더 고급스럽게 표현했다. 찬란한 보석 장식과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섬세한 자수 장식 등 들여다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디테일의 아름다움 또한 놓치지 말 것.
1. 빅터앤롤프는 의복 착용 방법에 대한 신선한 해석으로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섰다.
3.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도전
Dior
새로움을 창조하는 가장 보편적 방법은 바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스토리텔링이 펼쳐치는 오뜨 꾸뛰르쇼를 처음 본 이라면 20분 남짓한 이 시간이 생애 최고의 혼란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 바로 디올과 빅터앤롤프의 오뜨 꾸뛰르 쇼처럼.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아카이브에서 찾은 가수 겸 댄서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 속 그녀는 1951년 뉴욕의 디올 꾸뛰르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녀는 크리스찬 디올의 친구이기도 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던 그녀는 1925년 파리로 넘어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카바레 세계에 새로움과 활력을 더해주었고, ‘검은 비너스’라 칭송받으며 재즈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쇼걸로 유명했던 조세핀 베이커의 이미지에 기대는 대신 좀 더 미묘하고 절제된 접근 방식을 택했다. 바로 데이 슈트를 입은 레스토랑에서의 사진이나 제복을 입은 전쟁 중의 사진에서 조용하고 강렬한 영감을 받은 것. “이번 컬렉션의 실루엣은 1920년대에 가깝습니다. 깨끗하고 볼륨이 작죠.” 그 결과 플래퍼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반짝이는 구슬 장식, 은색 탭 팬츠와 골드 클로크 미디 슈트, 구조적인 코르셋을 없앤 바 재킷, 볼 가운의 웅장함을 제거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디자인한 실크 드레스 등을 선보였다. 쇼장은 아티스트 미칼렌 토머스Mickalene Thomas가 그린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할리우드 배우와 모델 등) 13명의 초상화로 장식해 컬렉션의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Viktor &Rolf
한편 정치 및 경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패션에 담는, 부조화 속에서 재미를 찾는 천재 듀오 디자이너 빅터앤롤프는 이번 시즌 옷을 착용하는 방법 자체에 도발적 해석을 더하며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완전히 뒤집어 착용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드레스, 포토샵의 오류인 것처럼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몸에서 벗어난 드레스 또는 모델 몸 옆으로 분리한 드레스 등이 그것. 몇몇 모델은 옷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이어피스를 통해 전달되는 디렉션에 의지해 런웨이를 워킹했다고한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은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사진을 찍으면 즉시 반전할 수 있고, 필터를 사용해 실루엣과 구조를 변형할 수 있죠. 우리는 현실을 원하는 대로 왜곡할 수 있고 타인에게 사실인 것처럼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제품의 물리적 특성 사이에는 단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바나나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것까지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쉽게 전달되는 정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상상 속 또는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 존재할 것 같은 드레스들을 보고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러한 위트와 창의력이 오뜨 꾸뛰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만은 확실하다.
writerPark Wonjung 패션 칼럼니스트
editorLee Minjung
©Getty Images, Spotlight, 하이더 아크만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