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에서 다이닝 룸과 거실을 내려다본 모습.
“모든 것은 텃밭 때문에 시작되었어요.” 브라질 상파울루주, 자구아리Jaguari 저수지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거실 앞에서 브라질국민 배우 클라우디아 하이아Cla´udia Raia가 집을 짓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수도에서 85km 떨어진 이곳 브라간사 파울리스타 마을은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이자 스타가 된 이후에도 수시로 가족과 함께 찾는 휴양지였다. 코로나19로 영화 촬영이 중단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및 이동이 제한되자 약혼자 자르바스 오멘 데 멜루Jarbas Homem de Mell, 두 자녀(전남편 사이)와 함께 휴식차 이곳 주변 별장에 머물렀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이렇게 장시간의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고립의 시간이 두 달 정도면 충분하겠거니, 했는데 5개월 이상 이어졌죠. 하지만 모두에게 선택의 여지 없이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지혜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라이프스타일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안식년, 그리고 별장 근처에 가꾸고자 한 텃밭이 바로 첫 번째 계획이었죠.” 곧이어 그녀는 파트너와 함께 땅을 보러 다녔다. 자신이 살 집이 아닌 식물이 잘 성장할 수 있는 명당을 찾아서 말이다. 그렇게 찾아낸 곳은 자구아리 저수지가 보이는 아담한 언덕. “주변에 마을도 없고 사람들도 볼 수 없는 고립된 장소였죠. 주말마다 찾을 요량으로 텃밭 옆에 오두막을 지으려고 친구 건축가 레우 셰트만Leo Shehtman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런데 같이 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판이 커졌어요.” 그렇게 소박한 텃밭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대형 건축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1 브라질 국민 배우 클라우디아 하이아와 파트너 자르바스 오멘 데 멜루. 늦은 나이지만 올해 2월 아들 루카를 출산했다. 2 대리석 계단을 내려오면 보이는 우구 프란사Hugo Fran a의 라운지 체어, 스튜디오 MK27의 아루마 플로어 램프Arum Floor Lamp는 모두 +55 제품. 안토니우 페헤이라 주니어Antonio Ferreira Junior의 태피스트리 작품도 눈길을 끈다.
집이 아닌 자연물 그 자체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와 함께 작업한 미국 마이애미 럭셔리 주거용 타워 ‘더 원’, 상파울루에 위치한 자연 주거 공간 ‘카사 두 파티오’ 등 개방형 레이아웃, 풍부한 자연 채광 및 자연과의 통합을 통해 실내외의 경계를 허무는 건축가 레우 셰트만. 그는 건물이 아닌 자연이 주인공이 되는 집을 떠올렸고, 부부는 이 계획에 따라 전체 방향을 수정하기로 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멋진 집을 지으려 했다면 동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안에서 행해지는 것들에 주목하고, 자연과의 소통을 화두로 건축의 기능과 미학을 함께 풀어내는 집을 만들고 싶다더군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축물이라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레우 셰트만은 건축가가 꿈인 자녀들과 함께 친환경 건축자재를 직접 찾아 나섰다. 그러다 천연 자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재활용 건축 자재를 만드는 업체 바우엔 엔제냐리아Bauen Engenharia의 문을 두드렸다. 집 안 내부를 감싸는 우드 패널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신소재를, 집 전체에는 내화 벽돌을 사용했다. 여름에는 햇볕을 반사하고 겨울에는 열을 머금기 위해서다. 좋은 자재를 사용함으로써 실내 열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단열재로 틈새를 차단해 보온병처럼 일정 온도를 유지한다. 건물의 에너지 성능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부족한 에너지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활용한다. 자연의 패턴을 모방해 공간을 설계하는 바이오필릭biophilic 디자인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쓰고 빗물을 정화해 재활용하는 등 이타적 주택을 만들기 위한 각종 지혜가 돋보인다.
땅이 곧 건물, 하늘이 곧 지붕
한편 건축가는 자연과 동화되는 집의 전체적 표정을 구상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친환경 디자인·기술·용법으로 중무장한 집을 설계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활용하는 영리한 집이 아니라 원시 그대로의 자연 풍광을 간직한 곳이 되길 원했다. “자연은 대부분 곡선 형태에 가깝습니다. 나누고 분리하는 직선이 통하지 않죠. 저는 이런 곡선과 직선, 개방과 차단, 자연과 건물이라는 각 영역을 일부러 흔들고 모호하게 만들어 조화롭게 느껴지는 구조물을 세우고 싶었어요.” 건축가의 말처럼 집은 어디까지가 실내이고 야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7m 높이의 파노라마 문이 여닫히는 거실에 있으면 야외 수영장과 저수지가 하나처럼 보인다. 현관은 존재하지만 사방이 뚫려 있어 큰 소용은 없다. 이 집에는 담도 없다. 천연 석재 외장 타일 브랜드 모사르테Mosarte의 벽이 우뚝 서 있지만, 이는 담이 아니라 자연을 조망하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L자로 쌓여 있는 박스 형태의 건물 내부에는 기둥이 없고, 벽마다 대형 창문이 있어 모든 것이 ‘통’한다. 이러한 특수 설계로 몇 분만 환기해도 공간이 금세 쾌적해지고, 신선한 바람이 실내 공간을 깨끗하게 해준다. 건물은 땅, 나무 컬러와 최대한 비슷한 마감재로 덮여 있다. 마치 물, 돌,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모양새다.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고 하루를 깨달을 수 있는 집이다. 이곳에서는 ‘여기쯤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겠다’, ‘여기서 비 오는 날 흙냄새를 맡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땅이 곧 건물이고 하늘이 곧 지붕이 되는 집은 하루 종일 빛과 그림자의 굴절이 빚어내는 환상적 장면으로 채워진다.
다수의 손님이 모여 앉아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넉넉하게 만든 오픈형 주방. 그릴 요리를 위한 화덕까지 갖췄다. 커스텀 주방 가구 전문 브랜드 델 아노Dell Anno가 디자인했다. 천장에서부터 설치한 디스플레이용 선반에는 보태닉 오브제 작품을 두었다. 로널드 사손Ronald Sasson이 디자인한 오다라 카사Odara Casa의 바우치Bausch 벤치가 슬쩍 보인다.
저수지와 연결된 것 같은 야외 수영장. 리카르도 벨로 디아스Ricardo Bello Dias가 디자인한 테이블 등으로 모두 +55 디자인 제품.
자연, 브라질 디자인의 결정체
건물 자체만 본다면 자연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지만, 인테리어 이야기까지 다 듣고 나면 브라질 디자인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클라우디아 하이아가 가장 깊이 영감받은 인물이 바로 브라질 건축가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1930년대 이후 번성한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곳으로 수도 브라질리아의 도시계획 및 건축 설계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건축가가 탄생했고, 모더니즘과 자연을 독창적으로 결합한 인재가 많다.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다. “저희 집을 처음 보았을 때 강철 기둥과 투명한 유리 벽, 곡선 지붕이 특징인 니에메예르의 집이 생각났어요. 그는 현대와 전통 기술을 오가며 인공과 자연 재료를 절묘하게 섞었죠. 설계 당시부터 집과 수영장 사이에 있는 화강암 덩어리를 예술 작품처럼 공간에 그대로 두어 건축 요소로 승화시켰죠.” 그를 오마주하기 위해 나선형 계단 아래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와 그의 딸 안나 마리아 니에메예르가 함께 작업한 1970년대 리우라운지 체어Chaise Longue Rio 작품을 배치했다. 브라질 모더니즘 디자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세르지우 호드리게스S rgio Rodrigues의 아이코닉 작품 몰Mole 암체어도 아끼는 작품 중 하나. 침실 한쪽에 자리한 이 의자는 폭신한 가죽 쿠션에 다리가 통통한데, 한번 앉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마법 같은 의자다. 세르지우 호드리게스는 토속 목재 자카란다, 임부이아 등과 브라질 특유의 목공예 기술을 활용했다. 폴란드계 브라질 건축가 조르즈 잘주핀Jorge Zalszupin도 주목해야할 디자이너 중 한 명. 마치 종이를 접은 것 같은 페탈라P tala 테이블, 우아한 나뭇결과 모양새가 일품인 디나마르케사Dinamarquesa 안락의자 등 브라질 디자인을 짐작할 수 있는 박물관급 작품을 거실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모이Moooi의 플록 오브 라이트 펜던트 램프Flock of Light Pendant Lamp 등 브라질 디자인 가구 사이에 놓인 현대 디자이너의 제품들은 집 안 곳곳을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만든다.
물결치듯 흘러내리는 계단 사이로 보이는 거실. 물라 프레타Mula Preta의 파드리노Padrino 소파와 블로코스Blocos 소파, 오다라 카사의 롤리타Lolita 커피 테이블.
1 테이블 위에 놓인 아트북. 2 우드 자체를 조각하듯 섬세하게 만든 오다라 카사의 캣워크Catwalk 다이닝 테이블과 판토시Pantosh 체어, 테이블 위 천장 조명은노보 암비엔테Novo Ambiente의 페랑Ferrao 램프. 3 벌집을 연상시키는 오다라 카사의 세레나Serena 책장.
모사르테의 콘크리트 스트립 벽은 자연을 조망하는 커다란 프레임이 되어준다. 아르테팩토 비치&컨트리Artefacto Beach&Country의 콘데이 II 모듈형 소파 듀오Kondey II Modular Sofa Duo. 리카르도 벨로 디아스가 디자인한 +55 디자인의 벨로 소파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 통로가 되어주는, 2층 높이까지 활짝 열리는 7m 파노라마 문.
우연과 기적
클라우디아 하이아는 브라질의 대표 가구를 특별히 배치하고 싶어 했고, 건축가는 가구에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면서 일부 직접 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대지에 따라 건물 모양이 바뀌듯 가구도 놓이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침실은 목수를 섭외해 숲에서 자란 나무로 침실, 벤치, 사이드 테이블 등을 만들었어요. 가능하면 건물 내부와 주변 자연의 컬러, 질감과 가장 비슷한 가구로 골랐어요. 건축가처럼 저도 건물과 가구의 경계를 없애고 싶었죠(웃음).”
그렇게 작은 텃밭을 만들겠다는 바람이 1,696m2 규모의 대형 건축 프로젝트로 발전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일이 수없이 일어났지만 그중 가장 놀라운 소식은 임신이었다. 이사를 시작했던 2022년 봄, 55세 나이에 세 번째 자녀 소식을 들은 것이다. “깜짝 놀랐죠. 기적이었어요. 건축가에게 게스트 룸을 아이 방으로 개조해야겠다고 급히 전화해야 했죠. 2023년 2월 11일, 아들 루카Luca가 태어난 날, 가족 모두 텃밭으로 나가 아이와 함께 자라게 될 나무를 심었어요.” 실패에서 얻은 결과조차 중요한 발견이 되는 세렌디피티 효과처럼 한 사람의 인생도 마음먹기에 따라 180도 바뀔 수 있다. 인생은 이렇게 우연투성이 같은 일 때문에 즐겁고 살 만한 것이 아닐까.
writerGye Anna
editorKim Minhyung
photographer Filippo Bamberg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