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나는 여행
2021/01 • ISSUE 32
writerChoi Meesun 여행 칼럼니스트
editorKim Jihye, Wang Minah
눈 위에 서서 뜨는 해를 보거나, 고요한 산사를 걷거나, 춥고 매서운 겨울을 포근하게 만끽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겨울 풍경을 만나러 떠나고 싶다면 바로 여기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고 한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이란 책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느새 또 한 해의 인생 페이지가 열렸다. 겨울 한복판에 있는 1월에는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기 십상이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다.겨울의 맛은 뭐니 뭐니 해도 눈이다. 사뿐사뿐 내려 소복소복 쌓인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면 눈으로 인한 불편함을 떠올리기보다 괜스레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또 새해 일출을 보러 가자니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 번거롭고, 안 보자니 왠지 섭섭하다. 그렇다면 살짝 늦은 해맞이로 조금은 호젓하게 새해를 여는 것도 좋다. 도심과 달리 내린 눈이 좀처럼 녹지 않아 순백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산길도 천천히 걸어보고, 꽁꽁 얼어붙어 동면하는 폭포의 별난 멋도 엿보고, 항구가 선사하는 맛깔스러운 여행으로 은근 신나는 첫 페이지를 열어보자.
여름 멋·겨울 멋 따로따로, 강촌 구곡폭포길
봉화산 기슭에 자리한 구곡폭포는 아홉 굽이를 돌아서 떨어지는 폭포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폭포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흘러내려야 제맛이라지만 50m 높이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던 물줄기가 꽁꽁 얼어붙어 거대한 빙벽으로 변신한 모습은 독특하다. 이즈음이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빙벽 전문가들이 몰려들어 이색적인 볼거리를 안겨준다. 수직으로 우뚝 선 얼음 절벽을 밧줄에 의지해 한발 한발 올라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스릴감 넘친다. 매표소에서 구곡폭포에 이르는 거리는 970m. 100m마다 꿈(희망은 생명), 끼(재능은 발견), 꾀(지혜는 쌓음), 깡(용기는 마음), 꾼 (전문가는 숙달), 끈(인맥은 연결 고리), 꼴(태도는 됨됨이), 깔(맵시와 솜씨는 곱고 산뜻함), 끝(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 등 ‘구곡의 혼’을 풀어놓은 문구를 살피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ADDRESS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구곡길 254
TRANSPORTATION 강촌역에서 구곡폭포 주차장행 버스 이용(약 1시간 간격 운행)
FOOD 문배마을 촌집(033-261-4002), 신가네(033-261-0929), 김가네(033-262-0881), 장씨네(033-261-1071)
TIP
구곡폭포: 입장료 2천원을 내면 같은 금액의 춘천사랑상품권을 준다.
문의 033-250-3569
김유정레일바이크: 강촌역에서 한 정거장인 김유정역에선 추억이 깃든 옛 경춘선 철로를 따라 레일바이크와 낭만열차를 타고 옛 강촌역으로 내려오는 재미가 있다. 문의 033-245-1000
하늘 아래 첫 절, 태백산 망경사
태백산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산이다. 그런 만큼 겨울 손님이 가장 많다. 태백산이 눈꽃 트레킹 명소로 인기 높은 건 웅장한 산세와 달리 경사가 완만해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태백산에 폭 파묻힌 망경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1,470m)에 위치한 사찰이라 하늘 아래 첫 절로 일컫는다. 정상 턱밑에서 등산객들의 소중한 쉼터가 되어주는 절 앞에 있는 ‘용정’ 또한 하늘 아래 첫 샘물이다. 국내 1백 대 명수 중 으뜸으로 꼽는 보약 같은 샘물로 유명해 이 물 한 바가지 마시러 오는 사람도 많다. 태백산 눈꽃 트레킹은 새해 해맞이 길이기도 하다. 바다 일출만큼 또렷하진 않지만 산 밑에 깔린 운무 속에서 수채화처럼 붉게 퍼지는 일출도 섭섭지 않을 만큼 멋지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간다는 주목 군락지도 덤으로 볼 수 있는 게 바로 태백산 여행의 묘미다. 죽어서도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며 비죽비죽 뻗어나간 가지마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꽃은 죽은 나무가 피워낸 아름다운 꽃이다.
ADDRESS 유일사 입구: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로 4246-19
당골 입구: 강원도 태백시 천제단길 195
TRANSPORTATION 태백역 앞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동행 버스 이용(유일사 하차), 당골행 버스 이용. 택시 요금은 1만5천원 선.*태백산은 오르는 길이 넓고 완만한 유일사 입구에서 출발해 당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무난하다. 넉넉잡아 5시간 소요. 겨울 산행엔 아이젠이 필수다.
FOOD 태백 시내 황지연못 앞 골목에 있는 조선옥갈비(033-552-5631)는 태백에서 알아주는 맛집이다.
TIP
태백석탄박물관: 당골 입구에 위치. 광부들의 애환이 깃든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 숲의 여왕’ 인제 자작나무 숲
화사했던 꽃도, 화려했던 단풍도 사라진 겨울 숲은 황량하다. 하지만 그런 겨울에 오히려 더 빛나는게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해서 이름 붙은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엔 포근함이 스며 있다. 뽀얀 피부에 군살 없이 늘씬하게 뻗은 자작나무의 자태는 특히 하얀 눈과 어우러졌을 때 더 우아해 ‘겨울 숲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곳이 인제 자작나무 숲이다. 산속에 은밀하게 숨은 자작나무 숲은 주차장에서 3.5km가량 올라 가야 나오지만 그 길이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완만한 임도이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ADDRESS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자작나무숲길 760
TRANSPORTATION 인제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2만원 선) 이용.
FOOD 인제 읍내에서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목에 옛날원대막국수(033-462-1515), 자작나무집(033-462-1357)이 있다.
TIP
온천: 자작나무 숲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필례온천(033-463-5000)은 규모는 작지만 눈밭 산책 후 풍광 좋은 노천탕에서 개운하게 몸을 풀기 좋다.
오랜 세월의 멋과 맛이 스민 부안 변산반도
숱한 시간을 거치며 겹겹이 쌓인 돌덩이들이 독특한 멋을 자아 내는 채석강, 빛바랜 단청이 속 깊은 멋을 발하는 내소사, 바위섬 위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솔섬, 오랜 시간 곰삭아 제맛을 발휘하는 곰소항 젓갈…. 변산반도는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끝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젓갈 산지인 곰소항은 김장철이 지나야 한숨 돌리며 한적한 포구의 멋을 자아낸다. 정적이 감도는 아담한 포구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어느 곳이든 서정미가 물씬 풍긴다. 특히 곱게 흩날리는 눈가루가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밤 풍경이 인상적이다. 반면 두툼한 솜이불을 덮은 듯 하얀 눈을 뒤집어쓴 소금 창고가 늘어선 곰소염전 풍경은 이국적이다. 곰소항 인근에 자리한 천년 고찰 내소사는 눈이 오면 더욱 진해지는 전나무 향이 코끝을 스치는 산책로가 매력적이다. 그 길 끝에 펼쳐진 눈 덮인 산사 또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이다.
ADDRESS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리 799
TRANSPORTATION 부안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곰소항 방면 버스 이용.
문의 063-581-1803(부안여객)
FOOD 곰소항의 별미는 젓갈 백반. 작은 종지에 담은 10여 가지 젓갈을 한 상 가득 차려 내오는 젓갈 백반은 그야말로 맛보기로 한 가지씩 집어 먹어도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곰소염전 건너편에 자리한 ‘슬지네 제빵소’는 곰소항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TIP
내소사: 입장료 어른 3천원, 청소년 1천5백원, 어린이 5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