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신세계 Art& Science에서 만나는
OLAFUR ELIASSON2021/10 • ISSUE 40
writerHyo Gyoung Jeon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editorJang Jeongjin
대전신세계 Art & Science 디 아트 스페이스 193에서 만날 수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신작 〈살아 있는 전망대The Living Observatory, 2021〉.
지금 바로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Olafur Eliasson, The living observatory, 2021, Model of invisible futures (detail), The Art Space 193, Photo: Studio_kdkkdk ©2021 Olafur Eliasson
"전망대를 통해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방식이지만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을 통하면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당연한 경험이 완전히 새롭고, 살아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공간으로서의 전망대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만드는 도형들
자연의 섭리를 본뜬 엘리아슨의 ‘살아 있는’ 세계
Olafur Eliasson, The living observatory, 2021, Revolving pentagonal starThe Art Space 193, Photo: Studio_kdkkdk ©2021 Olafur Eliasson
Interview
올라퍼 엘리아슨을 만나다ARTIST PROFILE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올라퍼 엘리아슨(1967~)의 예술 세계는 인간의 지각, 움직임, 물질화된 경험 그리고 자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 속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하기 위해 노력한다. 엘리아슨에게 예술이란 생각을 현실적 행동으로 바꾸어주는 아주 중요한 수단으로 조각, 회화, 사진, 영화, 설치 등을 섭렵한 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한정된 전시보다는 건축 프로젝트나 도시의 야외 공간을 통해 보다 확장된 공공의 영역과 관계하기를 지향해왔다.
Olafur Eliasson, photo. Brigitte Lacombe, 2016 ©2016 Olafur Eliasson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내가 자란 국가의 민주주의적 이상에 대한 경험까지 쌓여 현재의 내가 되었다. 성장기의 경험 중 작가로서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부분은 북유럽의 긴 여름이었다. 저녁에 실내 조명을 끄고 나면 희미한 노을빛에 눈이 적응하는 데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조명을 끄고 난 뒤 밖이 여전히 꽤 밝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신기한 경험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고, 경험의 상대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있다.
<살아 있는 전망대>에서도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방식은 우리의 관점이나 맥락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사실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아주 상대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했다. 나는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고 그뿐 아니라 현실을 다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재는 모두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결과다. 그렇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당연하게 여겨온 여러 전제들을 더 좋은 우리를 위해 재고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이런 질문에 더 나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살아 있는 전망대>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의도는 작품이 설치되기 전부터 그곳에 존재하던 것을 관람자들이 달리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작품을 통해 주변 환경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뷰를 만들고자 했다. 만화경, 카메라 옵스큐라, 거울의 반사는 바깥 풍경을 빌딩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고 그 풍경을 다시 보게 한다. 나에게 이러한 조각과 여러 요소들은 어떤 생각의 조합이나 새로운 시야가 모인 마을과 같은 것을 재현한다. 작품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관람자 각자가 기대한 만큼 가능하다. 최근에는 찰나적이고 분위기가 좋고 실험적인 특징보다는 물질, 오브제, 형태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살아 있는 전망대>는 대형 예술 작품으로서 규범적인 법칙에 다시 도전하고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다. 미래가 과거와 같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공존 관계를 보여준다. 무엇이 생태계를 정의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면 생태계 자체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이라 생각한다. 내가 자란 사회에서는 문화와 자연 사이에 단단한 이분법적 구분이 있었다. 이후 몇몇 지성인들은 지구의 생존 문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이 구분이 더 이상 이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는데, 예를 들어 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이 두 단어를 자연문화NatureCulture로 표기하면서 구분 없이 한 단어로 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기서 원칙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다는 인간 예외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 예외주의가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이를 조심스럽게 깨부수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간이 예외적이지 않다는 것이 점점 더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파리 조약이 체결됐을 때 나와 스튜디오는 환경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기 시작했고,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떠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 중 하나는 작품을 운송하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한국으로 작품을 가져오기 위해 가능한 한 대부분의 여정을 기차로 운송했고 일부는 배편을 사용했다. 기차나 배 모두 항공보다는 탄소 발자국이 더 적게 남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지속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나는 기술 문제에 대해 낯선 사람이 아니지만, 기술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다거나 작품 제작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설치, 사진, 영화 등을 사용해 작업해왔는데, 이는 기술이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는 매체들이다. 나는 기술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반대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것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숨 쉬는 이 현실과 협력하는 형태로, 그것은 거대한 공간일 수도 있고 그 자체로 어떤 이야기, 서사, 경험을 전달하는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 문화, 사람들,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나의 관심사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을 사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 〈살아 있는 전망대〉를 위해 사용된 기술은 단순한 환영을 만드는 것처럼, 대부분 아주 복잡하지 않았다. 거울처럼 간단한 사물을 사용해 새로운 관점을 열고 놀라운 통찰을 제시할 수도 있다.
스튜디오는 팬데믹 초반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거리 두기에 대한 여러 제약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거의 모두 제작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갖출 수 있었다. 이번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완성 단계까지 이끌어준 팀원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위기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위기가 있기 전까지는 아마도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서 그 중요함을 몰랐을 것들에 대해 집중하고 열망하도록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