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 ISSUE 41
writerJang Eunsu 출판편집인, 문학평론가
editor Jang Jeongjin
"영혼이 해파리처럼 둥둥 떠 있다. 세상도 이런 기분이면 편안할 것이다. 분별의 자물쇠를 열고 집착의 빗장을 벗긴다. 될 대로 되라며 온천물 안에서 온천물과 동화해버린다. 흐르는 것일수록 살아가는 데 힘들지 않다."
하코네, 온천다운 온천을 만나다
보통은 우에노 공원을 산책하고, 미술관 특별전 등을 관람하는 정도를 넘지 않는 비즈니스 일정으로 다녀온다. 그런데 그해는 어쩐 일인지 후지산을 관광하고 료칸에서 하룻밤 묵고 오기로 했다. 도쿄에서 하코네유모토 역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등산철도로 갈아타고 산으로 올라가 다시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두툼한 다다미가 깔린 방에서 창을 열면 후지산의 흰 머리가 선명히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물 솟는 원천源泉에 매우 가까워서 깨끗하고 성분 좋은 온천이 있는 료칸이었다.
주인은 기모노를 아름답게 차려입은 분이었다. 방으로 가이세키 요리를 가져다주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제까지 비바람이 심했는데, 여러분이 찾아온 덕분에 오늘은 맑게 갰습니다. 이 느낌을 요리로 표현해봤습니다. 장식한 꽃은 태양을 나타냅니다….” 맛있는 요리에 우아한 환영사를 들으니 료칸의 기품 있는 전통이 느껴져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졌다.
온천다운 온천을 여기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따로 얻은 노천탕은 료칸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 있었다. 쏟아질 듯 파란하늘, 사방을 아늑히 감싼 푸른 나무들, 온갖 문양을 그리면서 솟아오르는 자욱한 김, 피부에 와닿는 선선한 바람, 콧속을 간질이는 유황 냄새, 하얗고 노랗게 물든 바위, 바닥을 드러내는투명한 물빛 등이 한 폭의 풍경으로 생생히 다가왔다.
온천욕, 황홀하고 우아하고 고상한 체험
뜨거운 물이 세상 근심을 머리 바깥으로 몰아내면서 한 치의 괴로움도 없는 황홀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따뜻한 무지개 안으로 들어간 느낌, 극도의 평화 속에서 안식하는 듯한 태연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시라도 한 줄 읊어야 할 것 같았다. “문득 고요한 하루를 얻었으니, 백 년이 분주할 줄 바로 알았네.”
또다시 이 황홀경을 맛보고 싶어서 틈나는 대로 온천을 찾아서 목욕을 즐긴다. 덕산, 동래, 수안보, 온양, 유성 등 우리나라 전통 온천에서부터 도고나 부곡 같은 관광지 온천에 이르기까지 근처를 지나거나 여행할 때마다 빠짐없이 들러 몸을 녹이곤 했다. 그러나 첫 체험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하코네 료칸의 온천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한적함을 갖춘 곳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목욕, 물의 생명력을 가져오다
물로 돌아가려는 지향이 우리 마음에 강렬히 새겨져 있다. 양수 속에 둥둥 떠서 북소리처럼 두근대는 어머니 심장 소리, 허파의 수축과 이완이 빚어내는 숨소리, 혈관을 흐르는 피의 파도 소리 등이 어우러진 아득하고 온화한 평온이 무의식에서 끝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목욕은 단지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물의 원초적 생명력을 자기 안으로 가져오는 성스러운 행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목욕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센과 린이 일하는 온천장에 강의 신 오쿠사레가 목욕하러 오는 장면이다. 그러나 공해로 물이 오염되면서 오쿠사레는 신성을 잃어버렸다. 그가 온천장에 들어서자 고약한 냄새 때문에 개구리들이 모두 기절할 정도다. 센과 린은 그를 대욕장으로 이끌고 가 몸에서 쓰레기를 끌어내는 등 열심히 목욕을 시킨다. 마침내 더러움을 씻어낸 오쿠사레는 센에게 경단을 선물로 주고 하얀 용이 되어 날아간다.
물은 생명을 보호하고 되살리고 정화한다. 우리는 몸을 물에 담가서 생명을 돌려받고 싶어 한다. 테티스 여신은 스틱스 강물의 힘을 빌려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불사를 선물하려 했다. 신약성서의 세례요한도 강물의 힘으로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하려 했다. 깨끗한 물이 담긴 정병淨甁을 손에 든 이 보살은 버들가지를 떨어서 물을 뿌림으로써 사악한 것을 무찌르고 백 가지 병을 쫓아낸다. 물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치유하고 허물을 씻어냄으로써 죽음의 존재에서 생명의 존재로 거듭난다.
목욕은 본래 온천에서 하는 것
서양에서 목욕bath은 따스한 물, 즉 온천과 관련 있는 말이었다. 고대 독일어 바단badan에서 유래한 이 말은 ‘물이나 진흙에 몸을 담그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두 단어의 어근에 해당하는 바(ba-)는 ‘데우기’란 뜻이다. 목욕은 본래 따뜻한 물에 들어가 몸을 데우는 온천욕이었다. 유럽의 유명 휴양지인 영국의 바스Bath, 독일의 바덴바덴Baden Baden과 바트엠스BadEms, 오스트리아의 바덴Baden 등은 모두 대표적 온천 마을이다. 땅에서 솟는 뜨거운 물에 몸을 데우는 곳이기에 똑같이 ‘바’로 시작하는 이름이 붙었다.
중세 서양인은 온천의 성스러운 힘을 잘 알았다. 질병을 다스리고 정신을 치유하며 영혼을 정화하는 물의 신비한 기적 속에서 그들은 신의 선명한 얼굴을 보았다. 중세 내내 온천은 질병 치료소인 동시에 신의 힘을 체험할 수 있는 경건한 순례지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온천은 신의 손길이 닿은 성스러운 샘물이 아니라 효과 좋은 광물질이 듬뿍 녹아 있는 뜨거운 광천수로 변한다. 이와 더불어 조성된 것이 레저 마을이다.
온천, 스파가 되다
온천 없는 지역에 병원을 연 의사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유명한 지역의 온천수를 분석한 뒤 따끈하게 덥힌 물에 온갖 성분을 풀어 인공 온천장을 조성한다. 이것이 현대 스파Spa의 기원이다. 치료 효과와 미용 서비스만 제공하는 신 없는 온천 말이다. 온천 성분을 농축해 캡슐로 만들어 먹이고, 안마사를 동원해 굳은 근육을 풀어주는 등의 부가 서비스도 이미 이때부터 곁들였다.
다시 한번, 황홀 속으로
이러한 체험 없이 몸 씻고 머리 감는 행위를 워시wash나 샴푸shampoo라 한다. wash는 단지 물(wa-)로 몸을 세척하는 일이다. 샴푸는 ‘머리를 감는 일’이다. 이 말은 힌두어 참포champo에서 왔는데, ‘마사지’를 뜻한다. 즉 머리를 감기고 두피를 안마해주는 미용 서비스를 가리킨다. 목욕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인 워시나 샴푸를 넘어선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물에 몸을 담그거나 물에서 나오는 것을 통해 우리가 탄생의 힘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신의 힘이 담긴 온천에서 우리는 우주의 자궁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온천의 계절이 왔다. 온몸이 녹아나는 원초적 황홀을 다시 만나고 싶다.
"문득 고요한 하루를 얻었으니, 백 년이 분주할 줄 바로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