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탄생한 희망의 음악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writer 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intern editor Park Hyewon
피아노의 정명훈과 길 샤함(바이올린), 폴 마이어(클라리넷), 지안왕(첼로)이 협연한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음반.
제2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휩쓸던 1941년 1월 15일, 독일 동부 괴를리츠 인근의 포로수용소. 영하 20℃의 혹한이 닥친 가운데 음악회가 열렸다.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등 네악기 연주자는 독주 혹은 2중주 또는 3, 4중주를 연주하며 화음을 맞췄다.
독일군에게 붙잡힌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포로 3만 명이 수용된 이곳에서 연주된 음악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세계 초연이었던 이 연주회에서 메시앙은 직접 피아노를 쳤다. 악기들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첼로는 현이 하나 모자랐고 피아노 건반은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연주회에 참석한 5천 명의 포로와 독일군은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메시앙의 회고에 따르면 “내 작품을 이토록 황홀하게, 주의 깊게, 잘 이해하며 듣는 청중은 없었다”고 한다.
포로수용소에서 이루어진 세계 초연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곡가에 따르면 “예수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자 한 작품”이다.
8개 악장으로 구성한 것은 6일간의 창조, 7일째의 안식일, 마지막 8요일, 즉 평화의 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전쟁 포로가 된 메시앙이 수용소에서 작곡했기 때문에 작곡 과정엔 인간 의지의 치열함이 선연히 남았다.
메시앙은 1939년 11월 프랑스군에 입대해 가구 운반병으로 배치된다. 이듬해 5월 그는 포로로 잡혀 베르덩의 수용소에 수감된다.
이곳에서 첼로 연주자 에티엔 파스키에와 클라리넷 연주자 앙리 아코카를 만난다. 아코카는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
메시앙은 그를 위해 무반주 클라리넷을 위한 곡 ‘새의 심연’을 작곡했다. 그 음악은 메시앙이 불침번을 서며 들은 새벽의 새소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중에 이 곡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의 3악장이 되었다. 포로들은 베르덩에서 70km 떨어진 낭시로 옮겨졌다.
나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걸어서 가야 했다. 낭시에 도착하자 메시앙은 수용소 뜰 구석에 앉아 주머니에서 악보를 꺼냈다.
‘새의 심연’이었다. 아코카는 비로소 이 곡을 처음으로 연주해 볼 수 있었다. 파스키에가 악보를 들고 아코카는 연주를 했으며 메시앙은 음악을 들었다.
세 사람은 다시 괴를리츠 인근의 수용소로 이송됐다. 메시앙이 뛰어난 작곡가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독일군 장교 하우프트만이 작곡과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독일군이 메시앙에게 제공한 ‘조용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메시앙은 수용소 화장실 안에서 독일군이 제공한 오선지에 음표를 하나하나 그려나갔다.
연주자와 악기가 나타나면 작곡
이곳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 불레르가 합류했다. 독일군 장교가 악기를 지급해주어 르불레르는 바이올린을, 파스키에는 줄이 하나 모자라는 첼로를 갖게 됐다.
메시앙은 세 사람을 위해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삼중주곡을 썼다. 이 곡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의 4악장 ‘간주곡’이 되었다.
메시앙은 첼로와 바이올린을 위한 악장도 하나씩 썼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은 5악장,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은 8악장이 되었다. 두 악장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짝을 이룬다. 수용소에는 고물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메시앙은 자신이 피아노를 치면 사중주를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피아노를 포함해 네 악기가 모두 등장하는 1, 2, 6, 7악장이 이어서 작곡됐다.
이렇게 해서 클라리넷,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사중주가 탄생했다. 전례가 없는 악기 편성이었다. 연주가와 악기가 나타나면 그 상황에 맞게 작곡했기 때문이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사중주, 독주, 삼중주, 이중주 등이 50분간 섞여 연주되고 맥락이 연결되지도 않는다.
메시앙은 이 음악을 이해하는 비결을 “편견을 버리고 오직 청각의 처녀성을 가지고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음악의 형식 같은 틀을 버리고 무심히 귀를 기울이면 새의 지저귐,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곡을 들을 때는 초연 당시를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전시에 수용소에서 한 조각씩 음악이 만들어지고, 포로들이 허름한 악기를 연주하고, 수천 명의 동료들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음악을 흡수하는 정경을 상상해보라.
음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차원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