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의 진화
전통과 혁신이 깃든 트렁크
2020/7 • ISSUE 27
인간이 ‘여행’의 세계를 발견하고 트렁크 메이커의 전성기가 시작되던 때, 트렁크로 역사를 시작한 패션 하우스는 오늘날 상상 그 이상의 여행 가방으로 위대한 여정을 이어간다.
editorKwon Youjin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의뢰한 루이비통 라이브러리 트렁크.
여행 가방의 재발견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고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개념의 러기지는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상상력이 더해져 유니크한 트렁크로 탄생했다. 바로 럭셔리 하우스의 비스포크 트렁크가 그것으로, ‘아트 오브 트렁크’라는 표현이 부합할만큼 브랜드의 장인 정신과 기술력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19세기 철도 산업이 발달하면서 저명한 문호들은 트렁크 메이커에게 특별한 요청을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창작의 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트렁크를 제작해달라는 것. 1923년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 언제든지 서재로 변신하는 루이비통의 라이브러리 트렁크는 헤밍웨이의 집필 세계를 더욱 확장시켰다. 이외에도 스포츠 선수를 승리로 이끈 피겨스케이팅 트렁크, 영광의 순간을 담은 챔피언십 트로피 케이스, 미식가를 위해 진귀한 캐비아나 달콤한 마카롱을 담은 트렁크까지, 고객이 담고 싶은 그 어떤 것이든, 특별한 스토리와 함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행 가방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무엇을 담고 싶은가? 여행 가방은 당신의 꿈을 실현해 줄 수도, 또는 소중한 추억과 스토리를 부여해줄 것이다.
여행의 DNA를 담다, 루이 비통 커스터마이징 트렁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패션 하우스 루이 비통의 역사는 여행 트렁크에서 시작되었다. ‘여행’이 루이 비통의 가장 중요한 DNA이자, 1백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 시즌 중요 테마로 거론되는 이유다. 이동 수단이 발달하면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가볍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아름다운 여행 가방을 원했고, 루이 비통은 ‘그리 트리아농’이라는 가볍지만 내구성 강한 캔버스로 제작한 첫 트렁크를 선보이며 트렁크 메이커로서 명성을 쌓았다. 특히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커스터마이징 트렁크로 명사들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 1923년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신의 책을 보관할 라이브러리 트렁크를 의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3단으로 이루어진 트렁크에는 수십 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루이 비통이 특허받은 텀블러 자물쇠를 장착해 도난을 방지하는 데도 탁월했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 제작에는 한계가 없다. 프랑스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낭 드 브라자가 1905년 아프리카 탐험을 위해 의뢰한 침대 트렁크, 잔 랑방과 폴 푸아레 등이 의뢰한 드레스 룸 케이스, 더불어 현대에 이르러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우유 따르는 여인’을 운반하기 위해 제작한 맞춤 트렁크까지, 뿌리 깊은 장인 정신을 더한 루이비통의 유니크한 트렁크는 모두 파리 교외에 위치한 루이 비통 아니에르 공방에서 제작한다. 트렁크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하는 루이 비통의 무한한 상상력은 꽃을 담을 수 있게 내부를 방수 처리한 플라워 트렁크, 밀레니얼의 요구에 맞게 진화한 피크닉 박스와 스니커즈 박스, 휴대용 인형의 집으로 탄생한 비비엔 메종 트렁크까지, 목적이 무엇이든 그에 부합하는 트렁크를 만드는 여행 동반자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 ‘우유 따르는 여인’을 운반하기 위해 제작한 트렁크.
파리지엔의 우아한 여행 철학을 담은 모이나
1백70여 년이라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모이나는 당시 유일한 여성 트렁크 메이커이던 폴린 모이나가 세계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닫고 창립한 브랜드다. 브랜드를 대표하며 현재까지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리무진’ 브리프케이스는 무릎 위에 케이스를 놓고 데스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면을 오목하고 우아한 라인으로 디자인한 것이 특징. 무려 1백년 전부터 이들에게 고정화된 여행 가방 디자인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크리에이티브한 혁신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철학은 오늘날, 스페셜 MTO 트렁크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셰프 야닉 알레노를 위해 제작한 브렉퍼스트 트렁크는 어디서든 요리할 수 있도록 식기와 화강암 조리대, 가스 쿠커까지 갖춘 혁신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프랑스 아티스트 맘보를 위해 6점의 작품을 디스플레이할 수 있도록 폴드아웃 형태의 이젤을 트렁크에 포함시킨 아티스트 리무진 트렁크, 크루그 샴페인을 보관할 수 있는 매그넘 샴페인 트렁크, 작은 테이블까지 포함된 피크닉을 위한 자전거 트렁크까지, 기능과 형태가 유일무이한 트렁크는 모이나에서만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명사들이 사랑한 고야드 트렁크
1792년, 박스 및 트렁크 제작과 패킹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으로 시작한 고야드는 단순한 수납 트렁크를 제작하기보다 의류를 접어 패킹하는 섬세한 예술적 취향을 추구하는 브랜드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소재 개발에 힘썼는데, 가죽처럼 보이지만 리넨과 면을 혼합한 천연 코팅 캔버스인 고야딘Goyardine은 튼튼하고 부드러우며 방수 기능까지 갖춰 다른 트렁크 메이커가 일반 천을 사용하던 것에 비해 진정한 기술 혁신을 이뤄냈다. 고야드 트렁크를 사랑한 명사의 리스트는 실로 대단하다. 듀크 공작에게 선물 받은 가브리엘 샤넬의 의류 트렁크부터 잔 랑방의 슈즈 트렁크, 마릴린 먼로가 영화 촬영을 위해 특별 제작한 러기지 세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과 글로벌 투어를 함께한 트렁크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명사가 고야드 트렁크를 사랑했다. 특히 당대 최고의 추리소설인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넌 도일이 의뢰한 집필용 트렁크는 고야드 입장에서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그는 수납을 넘어 어디서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작업대를 갖춘 트렁크를 원했고, 고야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폴더형으로 펼쳐지는 나무 데스크와 타자기, 북 케이스 등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서랍형 수납 케이스를 제작했다. 이는 고야드의 헤리티지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손꼽히는 유니크 피스다. 고야드의 특별 주문 러기지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100%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제품이 완성되면 인식표에 트렁크 메이커의 이니셜과 시리얼 넘버를 새긴다. 폴로 트렁크, 캐비아 트렁크, 낚시 트렁크 등 고전적인 스타일부터 사치스러운 제품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