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게 띄운 음악
2020/7 • ISSUE 27
writerChoi Jeongdong 〈중앙일보〉 기자
우주탐사선 보이저에 실린 베토벤의 카바티나는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이 연주했다.
이들이 연주한 베토벤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언제나 첫손가락에 꼽힌다.
신문을 읽다가 한 군데서 눈이 멈췄다. 잠시 생각하다 아득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185억km’. 분명히 ‘억’이 붙어 있다.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가늠해보지만 나로선 상상하기도 힘들다. 지구와 태양 거리의 1백23배, 빛이 도달하는 데 17시간이 걸린다고 기사는 부연했지만 여전히 막막할 뿐이다.
뉴스는 보이저 2호에 대한 것이었다. 태양계 밖을 날고 있는 우주선의 과학 장비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는데 NASA(미국항공우주국)가 원격조종으로 살려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와 보이저 2호의 거리가 185억km라고 한다. 이 까마득한 거리는 나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다. ‘리모컨이 어떻게 그런 거리에서 작동한단 말인가!’
1977년 미국은 우주탐사선 보이저 Voyager 1, 2호를 떠나보냈다. ‘여행자’라는 이름의 두 쌍둥이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오지 않는다. 태양계를 벗어나 인터스텔라(星間)를 여행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10면으로 이루어진 몸체에 주발 모양 안테나를 달고 무게는 채 1톤이 되지 않는 여행자들은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차례로 지나 2013년에 1호가, 2018년엔 2호가 태양계를 벗어났다. 광막한 우주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기술로 만든 탐사선은 앞으로 5년 안에 전원이 바닥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본래 임무는 끝나고 ‘바다에 띄운 병’처럼 우주를 흐르게 된다. 언제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는 채.
우주에 별 관심이 없는 내가 보이저 뉴스를 정독한 것은 음악 때문이다. 두 우주선에는 음악이 실려 있다! NASA는 지구로 귀환하지 않는 보이저가 다른 문명을 만날 수도 있다는 환상을 품었다. 그러니 미지의 생명체에 지구의 인사를 전해야 했다. NASA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의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조직해 지구의 다채로운 삶과 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와 소리를 선정했다. 남녀의 모습, 수학 공식 등 1백15개의 그림과 파도, 바람, 천둥, 아기 울음, 고래의 노래 등 자연의 소리,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의 음악,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인사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LP 레코드와 같은 크기의 금도금 레코드에 수록돼 우주선 몸체 외부에 부착됐다.
음악은 90분 분량으로 여러 문명권의 고전을 망라했다. 일본, 중국 음악도 있는데 한국 것은 없다. 다시 선정한다면 한국 음악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뽑힐까. 아리랑? 아니면 BTS?
서양 클래식으로 분류되는 음악은 모두 7곡이다.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칼 리히터),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가보트와 론도(아르튀르 그뤼미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아리아 지옥의 복수(에다 모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2부 희생의 춤(스트라빈스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 전주곡과 푸가 1번(글렌 굴드),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오토 클렘페러), 베토벤 현악4중주 13번 카바티나(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 등이다.
목록을 보면 독일계에 치우친 감이 있다. 바흐 3곡, 모차르트 1곡, 베토벤 2곡이다. 클래식에서 결코 비중이 적지 않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악은 없다. 스트라빈스키는 원시 지구인의 풍습을 그린 내용 덕에 뽑힌 것일까. 어쨌든 장르상으로 보면 협주곡, 바이올린과 피아노 독주, 성악, 교향곡, 실내악, 무대 음악을 하나씩 골고루 선정했다. 음악의 종자種子 같은 곡들이다. 두 쌍둥이 보이저는 이런 음악을 싣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암흑을 가르고 있다.
7개 곡 중에서 ‘보이저 주제곡’을 정한다면 어떤 게 좋을까. 적막한 공간, 외롭게 떠가는 여행자를 떠올린다면 베토벤의 카바티나cavatina가 딱 어울린다. 카바티나는 청각을 잃은 음악가가 지은 곡이다. 베토벤이 그의 현악4중주 13번 Op. 130 초연 무대에서 마지막 악장 푸가를 앙코르로 청하지 않은 빈 시민을 소 떼, 당나귀들이라고 욕했다는 이야기를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칼 세이건이 이끄는 NASA 위원회가 자신의 현악4중주 13번에서 카바티나를 골랐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1백50년이나 지나도 인간들은 푸가를 몰라본다고 한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보이저가 다른 별을 만나는 것은 4만 년쯤 뒤라고 한다. ‘4만 년’이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외계인이 카바티나를 듣고 감동해 지구를 찾아오면 인류는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것인가. 185억km도 그렇지만 4만 년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