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다시 생각하다
안목 있는 집
2021/01 • ISSUE 32
editorKim Jihye
writerTaehyuk Choi 〈VILLIV〉 매거진 디렉터
1 인도 뉴델리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된, 내부에 황동 브론즈의 금속 디테일이 특징인 오리엔트 조명
• ø38×H105cm, 4천3백65만원 • LIAIGRE
2 심플한 디자인에 마감재를 변경해 모던하게 연출 가능한 레오나르도 사이드 테이블 •
W65×D50×H58cm, 가격 미정(규격 및 마감재에 따라 상이) • LIAIGRE
3 리에거의 클래식 피스 중 하나로, 마감재에 따라 다양한 무드를 연출할 수 있는 무송 소파 /
요트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된 커피 테이블로, 라운드 형태와 독특한 소재의 특성이 돋보이는 일렛 커피 테이블 • W122×D80×H34cm, W122×D80×H40cm(2Type) /
최상단 선반에 아트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디자인된 오픈 타입의 리테라티 북케이스 /
소파 옆에 두고 사용하기에 편리하며, 다양한 마감재로 연출 가능한 플리부스테 사이드 테이블 • W60×D40×H37.5cm 모두 가격 미정(규격 및 마감재에 따라 상이) • LIAIGRE
업무가 들어온 집의 변화
올해 코로나19로 방역 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많은 회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외국 회사 또는 외국계 회사만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콘퍼런스 콜’이라는 화상이나 음성 회의도 활용한다. 이제는 소규모 팀 회의도 내 방에 앉아 컴퓨터를 통해 이야기하고 문제를 논의한다. 뉴스에서 고령층 정치인들 간에 화상 회의를 하는 모습까지 방송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도 콘퍼런스 콜이 매우 자연스러워진 듯하다.
우리보다 원격 회의가 일찍 자리 잡은 미국은 현재 근로자의 64%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집의 사무실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것과 별개로 집에서 업무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소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업무에 적합한 테이블, 의자, 전자 기기를 구매하는 것부터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동시에 업무 미팅 시 갈아입지 않아도 되는 하우스 드레스도 구매가 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주거 공간에 홈 오피스를 설치할 수 있는 조립식 주택 ‘프리패브prefab’에 대한 인기도 증가하는 중이다.
‘일은 사무실에서’라는 말이 매우 낯설게 들리는 요즘, 독일 베를린에는 차로 1시간 거리의 시골 마을에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코코넛 스페이스라 이름 붙인 이곳에서는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활용해 일과 쉼을 병행한다. 이곳은 자연이 주는 고요와 여유, 사람 간의 온기 속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는 생각으로 ‘워케이션 리트리트’를 표방한다.
전 세계 가구 흐름을 알 수 있는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도 일찌감치 재택근무자를 위한 가구를 선보여왔는데, 코로나19가 이러한 ‘재택 문화’를 강제로 앞당기는 중이다. 이제 업무는 더 이상 빌딩 내 사무실에서만 일어나는 행위가 아니다. 업무가 집으로 들어옴에 따라 집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집을 집이 아닌 것으로 보기
공간의 본래 역할을 변화시키는 시도는 이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런던에서는 18~19세기에 마구간으로 쓰던 곳을 개조해 미니멀을 지향하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주거 공간을 선보이는가 하면, 2015년 터너 프라이즈 ‘올해의 예술가’에 선정된 어셈블은 영국의 폐주유소를 영화관으로 바꿔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제안하고 있다.
1 편안하게 누워 쉬는 공간뿐만 아니라 라운지에도 잘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의 겟 백 소파 • W334×H168cm, 4천4백53만원 • POLTRONA FRAU
2 볼륨감 넘치는 형태가 매력적이며, 너도밤나무로 지지 구조를 제작해 내구성이 뛰어난 배니티 페어 체어 • W92×D96×H85cm, 1천92만원 • POLTRONA FRAU
집은 자신의 세계를 담는 그릇
요즘 들어 집에 대한 정의가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회문제와 얽혀 더 가속화하는 느낌이다. 이럴 때일수록 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집은 그 안에 사람이 있을 때 본연의 이름을 얻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폐가’라고 말하듯. 다시 말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 오랜 시간 쌓아온 습관 같은 것이 모여 ‘집’을 이룬다.
잘,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지 결혼 자체가 목적이 아니듯, 우리는 예쁜 집을 만들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우선해야 하는 이유다. 독일의 철학가 괴테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의 크기나 가구에 대한 관심은 잠시 뒤로하고,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