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하는 생각만이
진짜 생각이다
2021/01 • ISSUE 32
지혜란 무엇인가. 연필을 통해 다져지고 단련된 생각이다. 이러한 단단한 사유만이 시간의 시련을 견딘다. 연필은 소멸을 통해 불멸을 이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writerJang Eunsu 출판편집인, 문학평론가 editorKim Jihye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손이 하는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백지 노트를 사는 것이다. 연필이 잘 묻어나는 적당히 거친 지질에, 낙서를 견딜 만큼 낱장은 두껍고, 실로 매이거나 스프링이 달려서 끝까지 펼쳐지고, 마음 가는 대로 끼적일 수 있도록 아무 줄도 그어져 있지 않고, 한 해를 버틸 만큼 쪽수가 많으면 좋다. 읽다가 적고, 보다가 적고, 생각하다 적고, 말하다 적고, 듣다가 적는다. 도표도 구상하고, 그림도 그리고, 새까매질 때까지 글자를 겹쳐 쓰기도 한다.
백지에서 생각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자주 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고, 이를 잘 끄집어내 종이에 옮겨 적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나 생각은 암기가 아니다. 생각은 기존 지식이나 정보를 베끼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복붙’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다. 자료를 요약하고 정리해서 결론을 내는 것도 완전히 생각은 아니다. 결론 앞에 ‘참신한’, ‘새로운’, ‘획기적인’, ‘혁신적인’, ‘창조적인’ 같은 형용사를 덧대보자. 눈앞이 캄캄하다. 생각은 참 어려운 일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나를 떠올려보면, 화면과 마찬가지로 머릿속도 백지라는 것을 금세 알 것이다.
생각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차라리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야 옳다. 〈생각 연필〉에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생각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묘사한다.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요./ 좋은 생각은 구름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까요./ 그러다 팔랑팔랑 날아올까요?/ 살그머니 다가올까요?” 생각은 구름이 만드는 것이다. 바람이 가져오는 것이다. 책이 일으키는 것이다. 선생님은 “마음을 다해 열심히 찾으면” 어디서나 생각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옳지 않다. 생각은 “자기가 오고 싶은 방법”으로, “자기 맘대로 찾아온다”. 바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안의 스위치를 켤 때 비로소 생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한 해 첫머리에 노트 하나를 구매하는 것은 생각의 자그마한 운동장을 마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각은 노트에서 뛰놀다 어느 순간 내 안으로 뛰어든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손을 통해 행동한다”라고 주장했다. 독일어로 ‘행동하다’는 handeln이다. 이 말의 어간은 독일어로 ‘손’을 뜻하는 단어 hand와 같은 형태다. 행동하는 것은 곧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손은 인간 행동 전체를 집약하고 대표한다. 인간 몸의 다른 어떤 기관도 손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손은 매우 민감하고, 극도로 섬세하게 작동한다. 손이 없다면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일어서서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는 힘을 얻음으로써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손끝으로 생각한다. “손은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손이 있기에 인간은 의지대로 세상을 바꾸어갈 수 있었다.
연필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 아니듯, 생각은 손의 주인이 아니다. 손은 인간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차라리 손이 움직이는 방식대로 인간이 생각한다고 해야 하리라. 생각한 대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도스토옙스키이고 카프카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인간은 실제로 손이 허락하는 만큼만 글을 쓴다. 인간은 쓰면서 생각하지 생각하고 쓰지 않는다. 생각을 미리 해두어도 손끝에서 구현된 단어가 낯선 단어를 부르고, 문장을 샛길에 빠뜨린다. 처음 구상대로 작품을 완결하는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손이 머리를 자극하고 이끌어 생각을 끄집어낸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 사실을 잘 알았다. “형식이 결여되어 있으면 생각도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이 있고 생각에 적합한 단어를 발굴하는 과정이 아니다. 노트에 기록된 단어가, 연필을 들고 글을 쓰는 행위가 생각에 형태를 부여한다.
"연필은 소멸을 통해 불멸을 이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가네시의 화신인 작가들 역시 잘 알았다.
연필로 하는 생각만이 진짜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연필은 신의 상아로 만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의 차가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도구로 연필 한 자루를 선택했다. 런던의 겨울에는 따뜻한 집과 두꺼운 코트가 필요하지만, 인생의 겨울에는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생각을 적을 수 있는 연필이 필요했다. 청년 시절의 루소도 마찬가지였다. 루소는 산책할 때 늘 주머니에 수첩과 연필을 넣어두고 다녔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다듬어 시대에 대한 분노와 우울을 문학으로 바꾸어갔다. 연필을 통해 끝없이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불멸의 연애소설 〈신엘로이즈〉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연필을 10여 자루 정도 깎아둔 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트루먼 커포티는 한 손에는 칵테일을, 다른 한 손에는 연필을 든 채 누워서 글을 썼다. 연필이 한 자루 한 자루 사라지는 자리에서 한 줄 한 줄 문학이 태어난다.
인도 신화에 따르면, 연필을 발명한 것은 지혜의 신 가네시다. 코끼리 모양을 한 가네시는 자신의 상아 하나를 부러뜨려 연필을 만들었다. 이로부터 생각은 문자로 남아 불멸과 불후를 노리게 되었다. 지혜란 무엇인가. 연필을 통해 다져지고 단련된 생각이다. 이러한 단단한 사유만이 시간의 시련을 견딘다. 종이 위를 움직이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연필의 육체는 어쩐지 세계라는 지표면 위에서 움직이다 스러지는 우리 몸과 닮았다. 연필은 소멸을 통해 불멸을 이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가네시의 화신인 작가들 역시 잘 알았다. 연필로 하는 생각만이 진짜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