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칸타타 ‘Actus Tragicus’
가장 좋은 때
2021/05 • ISSUE 36
writerChoi Jeongdong 〈중앙일보〉 기자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지구촌 전역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다. 확대해서 보면 화려한 왕관을 닮아 코로나로 불리는 바이러스 때문이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래 불과 1년 만에 확진자가 1억 명을 돌파했고, 그 기간에 미국에서는 2차 대전 희생자 40만 명을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유럽 주요 도시인 파리, 런던, 베네치아는 중세의 페스트 시대로 돌아간 듯 텅 비었다.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의 도시 외곽에는 관 하나를 겨우 놓을 만한 묘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21세기에 죽음이 널린 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바흐(1685~1750)가 살던 시대는 30년 전쟁이 끝나고 인구가 팽창했지만 역시 많이 죽기도 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바흐의 아버지 암브로시우스는 8남매를 두었지만 그의 집이 복작거릴 틈도 없이 아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첫째 루돌프는 생후 6개월 만에 죽었고, 넷째 요나스는 바흐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열 살의 나이로 죽었으며, 이듬해 유디타도 여섯 살에 죽었다. 막내 바흐는 4명의 형제와 성장했다. 그러나 형 발타자르도 바흐가 여섯 살 때 죽고 말았다. 결국 바흐는 부모와 누나 살로메, 세 살 위 형인 야코프와 같이 살았다. 하지만 바흐는 겨우 열 살을 넘기고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연이어 잃고 만다. 바흐에게 죽음은 일상이었다.
아주 느리게 연주하는 서주 격의 소나티나가 행사를 인도한다. 사람의 목소리 없이 비올라 다 감바 2대에 얹혀 리코더 2대가 선율을 이끄는 이 부분은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남은 이들의 슬픔을 달래는 신의 숨결 같다.
이어 장중한 합창이 터져 나온다. “하나님의 때가 최상의 때로다.” 죽음을 비극이 아니라 축복으로 본다. 이어지는 노래들은 인간의 운명을 일깨운다. 테너가 “주여, 우리가 남은 날을 셀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라고 노래하고, 베이스는 “네 주변을 정리하라”고 명령한다. 이어 합창이 “죽음은 오래된 맹세, 사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2부에서는 죽음이 곧 구원이다. 알토가 “당신의 손에 영혼을 맡깁니다”라고 노래한 뒤, 베이스가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노래 부른다. 이때 먹구름을 뚫고 햇살이 비치듯 마르틴 루터의 코랄(찬송가)이 겹친다. “당신의 뜻에 따라 평안과 기쁨으로 떠납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교회음악도 작곡했는데 바흐는 칸타타를 쓰면서 이를 활용했다. 이 칸타타에서 코랄은 하늘나라에서 들려오듯 따뜻해 듣고 있으면 천국의 평안이 몸을 감싸는 듯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신의 때, 즉 죽음의 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요즘은 ‘Actus Tragicus’를 들으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코로나19 환자들이 떠오른다. 의지할 데 없이 홀로 두려워할 그들에게 바흐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