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나온 귀한 LP 두 장을 집으로 업어 왔다. 1960년대는 스테레오 음향 기술이 꽃을 피운 시기였고 음악 매체로서 LP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요즘 LP 컬렉터들의 수집 대상도 이 시기의 유산에 집중된다.
수록곡은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1번(Op. 99)과 2번(Op. 100)이다. 두 곡은 보자르 트리오Beaux Arts Trio의 초기 음반으로 가지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뛰어난 예술가들인 보자르 트리오는 ‘모든 곡을 잘’ 연주하지만, 반드시 이들의 연주로 들어야 하는 곡은 또 드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의 슈베르트는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차에 슈베르트 트리오의 명연주로 꼽힌다는 음반을 만났으니 집으로 모셔오는 발걸음이 설 다.
연주 단체는 트리에스테 트리오Trio di Trieste다. 처음 들어보는 삼중주단이다. 음반 뒷면에 간단한 설명이 실려 있다. 1933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다리오 로사(피아노), 레나토 자네토비치(바이올린), 리베로 라나(첼로)가 결성했다. 놀라운 것은 당시 그들의 나이가 12~14세였다는 것. 소년들은 기량을 갈고닦아 1940년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래 봐야 스물 전후였던 그들은 탁월한 연주 기량뿐 아니라 음악의 본질을 간파하는 직관으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첼리스트 라나가 1960년 사망하면서 아마데오 발도비노로 교체됐지만, 트리에스테 트리오는 1995년까지 60년이 넘도록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음반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트리에스테’라는 지명이 눈에 띄었다. 도시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알고 있지만 이탈리아 북동부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그곳을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바다 건너 서쪽의 베네치아, 남쪽에 가까이 붙어 있는 슬로베니아의 피란까지는 가봤지만 트리에스테는 여전히 궁금한 도시로 남아 있다.
트리에스테는 지중해가 아드리아해의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다 가장 북쪽까지 땅을 파고든 곳에 자리 잡았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칸으로 넘어가는 교차로다. 이런 입지 탓에 도시의 주인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굵직한 이름만 떠올려도 로마제국, 프랑크왕국, 베네치아공화국, 오스만제국,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 역사의 주역들이다. 터 잡고 살던 시민은 나라가 뒤집힐 때마다 고초를 겪었겠지만, 그들이 온몸으로 겪은 것은 세계 역사의 본류였다. 왕조가 번갈아 오갔으니 다양한 민족이 이곳에서 뒤섞였다. 트리오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나토 자네토비치Renato Zanettovich의 이름을 뜯어보면 라틴족과 슬라브족의 DNA가 섞여 있다.
음반 재킷 사진을 봐도 트리에스테 남자들의 생김새는 ‘파바로티풍’이 아니다. 남부 이탈리아인의 특징인 검은 머리칼에 빵빵한 몸매 대신 금발에 훤칠한 키,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다. 라틴과 슬라브, 게르만의 피까지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다. 19세기 중부 유럽의 다채롭고 풍족한 유산을 체화한 사람들이라고 할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붕괴되면서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에 합병돼 제국 제1의 항구도시 지위를 잃는다. 트리오가 결성된 것은 그 무렵이다. 도시 이름을 딴 삼중주단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이제 도시 트리에스테는 유럽에서도 그리 유명하지 않다.
트리에스테 트리오의 연주는 어떨까. 귀 기울여 들어보니 이들은 앙상블이 뛰어나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누구도 홀로 튀거나 과장하지 않고 한 몸이 되어 정밀한 연주를 펼친다. 하지만 내연內燃하는 열기는 뜨겁다. 그것이 집중과 감동을 불러온다.
슈베르트 트리오의 중심은 2번 2악장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배리 린든>과 전도연이 주연한 <해피 엔드>에도 삽입된 그 멜로디는 폭풍 같은 운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듯 비장해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다. 원래 ‘태양은 지고(Se solen sjunker)’라는 제목의 스웨덴 민요인데 슈베르트가 선율을 빌려왔다. 오늘날 같으면 표절이라고 비난받겠지만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이 선율은 마지막 4악장의 빠른 패시지 속에 두 번 더 등장한다. 그것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자꾸 뒤돌아보는 슈베르트를 연상시킨다. 피아노 트리오 2번은 1828년 봄 슈베르트 생애 최초로 그의 작품만으로 꾸며진 음악회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됐다. 그러나 그해 가을 서른한 살 청년은 떠밀리듯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나는 트리에스테 트리오의 4악장을 들으며 뒤돌아보는 슈베르트의 얼굴이 떠올라 아득한 슬픔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