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는 진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책 한 권은 품고 있거든요.”
<돌로레스 클레이본>, <미저리>, <쇼생크 탈출> 등으로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를 일컬어 ‘끙끙거리는 힘겨운 노동’이라고 묘사한다. 뮤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가 우리 컴퓨터에 창작을 돕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작가는 뮤즈가 존재하는 곳을 찾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많은 책이 그 발품과 노력에 집중하기보다 얄팍한 기술이나 팁만 전해주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에 대한 진심이 담긴 책들을 통해 우리, 아니 나만의 글쓰기 방법을 찾아보자.
작가만이 누리는 행복에 대한 통찰, 〈글쓰기에 대하여〉
캐나다 출신 시인이자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는 시와 소설, 논픽션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문학가’로 평가받기까지 40여 년의 작가 경험을 녹여낸 책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초청 강연을 바탕으로 책의 완성도를 높여 읽는 맛이 좋다. 애트우드는 서두에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말하지만, 이렇다 할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마다 이유가 있어 그 욕구를 하나의 문장으로 집약할 수없다. 누군가는 명예를 위해, 어떤 이는 돈 때문에, 또 다른 이는 글이 좋아 쓸 뿐이다. 다시 말해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자기만의 이유를 분명하게 세우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는 의미다. 글을 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을 사랑한다. 결과물이라 함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띨 수 있다. 작품 자체가 흠결 없이 완성도가 높다거나, 문학성 또는 작품성에 상관없이 많이 팔린 것도 하나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이유가 충분한 사람의 태도는 다르다. 애트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지도 몰랐지요.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글쓰기에서 그 같은 경험은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혹은 충동”을 가진 사람만의 것이다. 물론 이 욕망과 충동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작가도 일상을 살아내는 보통 사람이기에 글 쓰는 자아와 일상의 자아가 날마다 충돌하기 때문. 어떤 이의 욕망과 충동은 희미하고, 누군가의 그것은 반짝반짝 빛난다. 다만 오해는 금물이다. 글을 쓰는 자아가 일상의 자아를 이길 때만 작가로서의 욕망과 충동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글쓰기는 인간의 실존과 관련한 행위임을 애트우드는 분명히 한다. 이야기를 찾는 여정은 “어둡고도 복잡한 길”이라 말하는 애트우드는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독자들과 대화하며 글 쓰는 일이야말로 작가만 누릴 수 있는 기쁨임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에 대하여>는 실제적 기술이나 방법이 아닌 작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기만의 이야기로 풀어낸 아름다운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