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소싸움은 반동적 사회집단이라기보다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행사로, 정체성의 정치보다는 전통문화의 자원화라는측면에서 벌어지나, 그 깊은 이면에는 수도권 중심의 발전 속에서 더욱 소외되어온 ‘지방’의 현재가 있다.”
지구는 누구의 것일까. 인간이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기 전에는 동물과 식물이 지구의 주인은 아니었을까. 인간과 동물, 식물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지구였지만, 이제는 인간만이 유아독존唯我獨尊하는 듯 보인다. 어떤 동물들은 그래도 오랜 시간 인간 곁을 지키며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동물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지, 인간은 그 동물을 얼마나 소홀히 여기는지 책을 통해 만나보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하다.
동물 입장에서 본 인간과 그 너머, 〈동물 너머〉
인류학자 전의령의 <동물 너머>는 현대의 동물 해방, 비건, 동물권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이런 논의만으로는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지점을 성찰한다. 다만 저자는 “어떤 거창한 윤리적 전환”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을 강조한다. 저자는 머리말 “왜 ‘동물 너머’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물이 핵심 주제어인 책의 제목을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너머’로 지은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동물이 종종 동물권의 ‘동물’을 ‘넘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련 담론의 지형 ‘너머’ 산적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의 동물 논의는 동물권, 즉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쉽게 버려지고 죽임당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동물의 삶을 드러내는 움직임과, 피터 싱어를 중심으로 한 철학자들의 동물 윤리론으로 나뉜다. 두 지형이 동물 논의에서 모두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전자는 “감정을 자극하고 개개인의 도덕심을 고양시켜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상기”시키고, 후자는 “상황을 탄탄하게 이해하는 이론 틀을 제공하지만 탁상공론”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결국 동물 ‘너머’를 바라봐야 동물은 물론 우리 시대의 모든 타자他者에 대한 논의의 범주를 확장할 수 있다.
반려동물과 반려 문화가 자녀를 대체하는 형국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저자가 보기에 미디어가 흔히 범하는 일반화의 오류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종속되지 않고 쌍방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한 자본과 미디어가 그 사이에 개입해 먹이, 집 등 적잖은 비용을 지출하게 함으로써 반려인이 뿌듯함과 죄책감을 번갈아 느끼도록 강요한다. 반려동물만 사회적 작용을 하는 건 아니다. 전국의 재건축 현장을 떠도는 길고양이들은 다시 인간과 관계를 맺고 도시와 주거 공간의 의미를 묻는 역할을 한다. 저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인간-동물관계는 동시에 인간-인간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동물만의 문제, 순수하게 인간만의 문제란 없다.
”저자는 인간은 결국 동물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비인간인 동물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고통을 직접 말할 수 없기에” 그렇다. 결국 인간이 대신스피커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다양한 인문적 함의를 만날 수 있는 <동물 너머>는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