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ERA OF FASHION WEEKS
이윽고 메타버스 세계에서 패션 위크를 여는 시대다. 디지털 세계의 패션 위크에서는
누구나 VVIP가 되어 프런트로에서 쇼를 관람하고 유명인과 어깨를 부딪치며 애프터 파티를 즐길 수 있다.
‘패션쇼의 디지털화’는 런웨이를 라이브 스트리밍하는 것에서 발전해 모델이나 의상도 실제가 아닌 3D 영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미 2020년 7월, 헬싱키 패션 위크에 참여한 ‘오픈플랜’의 디자이너 이옥선은 당시 패션쇼는 물론 의상을 디자인하고 그에 맞는 원단을 선택하고 모델에게 피팅하는 과정까지 모두 가상, 즉 3D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단 자투리나 실밥 등 쓰레기와 탄소가 배출되는 기존 패션쇼에 비하면 디자인, 가봉, 패션쇼까지 3D 방식으로 하는 것이 친환경적이며, 헬싱키 패션 위크는 철저하게 ‘디지털화한 친환경 사이버 패션 위크’로서 디자이너들을 디지털 세계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불과 몇 년 만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지난 2022년 2월에 열린 뉴욕 패션 위크에서 미국 디자이너 조너선 심카이는 메타버스 패션쇼를 선보였다. 그는 실제 패션쇼를 열기 하루 전날 아바타 모델을 내세워 디지털 패션쇼를 열었고, 이때 선보인 총 열한 벌의 의상은 3D 디지털 의상으로 판매했다.
최초의 메타버스 패션 위크
이윽고 지난 3월, 최초의 메타버스 패션 위크가 열렸다. 장소는 코인 마나Mana를 사용하는 이더리움 기반의 메타버스 플랫폼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디센트럴랜드는 디지털 패션의 잠재력을 발굴하기 위해 2020년 2월 론칭 시점부터 아바타를 위한 디지털 어패럴을 직접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디센트럴랜드가 개최한 제1회 메타버스 패션 위크(Metaverse Fashion Week, MVFW)는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의 4대 도시 패션 위크가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 3월 24일 부터 27일까지 총 4일간 열렸다. 제1회 MVFW에는 파코라반, 에트로, 호간, 돌체앤가바나, 휴고 보스, DKNY, 토미 힐피거 등의 브랜드는 물론 더패브리컨트The Fabricant와 오로보로스Auroboros 같은 혁신적 디지털패션 기업과 포에버21, 셀프리지 백화점 등 유통 브랜드까지 70여 개 브랜드와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뷰티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에스티로더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패션 위크 같은 스케줄
디지털 패션 위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우선 패션쇼의 타임테이블이 있는 것은 실제와 비슷하다. 유저들은 타임테이블에 적힌 각 브랜드의 런웨이 시간에 맞춰 디지털 세계의 브랜드관에 입장한다. 디지털 세계의 나, 즉 아바타를 이용해 패션쇼에 입장하면 어떤 아바타들이 패션쇼를 보러 왔는지, 그들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혹자는 ‘내 아바타 패션만 너무 단순해서 초라한 기분을 느꼈다’고도 고백한다(메타버스 안에서 다른 아바타와의 교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디지털 의상 구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패션쇼는 실제 패션쇼와 비슷하게 약 15분 내외로 진행됐다. 메타버스 런웨이를 위해 특별 제작한 옷이 등장하기도 했다. 옷과 액세서리는 바로 구입해 아바타를 화려하게 커스터마이징하거나 실물 상품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 이는 실물 거래를 지원하는 플랫폼인 보손 프로토콜Boson Protocol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던 현실 세계의 패션 위크와는 달리 디지털 패션 위크는 낯설고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시간은 GMT 기준이라서 한국 시각으로는 주로 새벽 3, 4시에 패션쇼가 열린 것은 아쉬운 부분.
디지털 세계에서는 누구나 VIP가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Everyone is V.I.P.’라는 MVFW의 캐치프레이즈다. 과거 패션 위크의 가장 앞자리는 늘 유명인의 전유물이었다. 프런트로의 상징성 때문에 자리 신경전이 치열하고, 브랜드 PR 담당자는 다사다난한 에피소드를 한가득 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이젠 과거의 유물. 메타버스 패션 위크에서는 모든 이에게 프런트로를 활짝 열어놨다. 누구나 패션쇼의 VIP가 되고 패션쇼가 끝난 뒤 열리는 애프터 파티에도 입장할 수 있다. 아바타를 이용해 유명 디자이너, 모델들과 바로 옆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춤추고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파티를 즐길 수 있다.
누가 먼저 깃발을 꽂을까
메타버스는 가능성이 무궁한 미지의 땅이다. 모건 스탠리MorganStanley는 디지털 패션 산업이 2030년까지 5백억 달러의 가치를 지닐 것으로 내다보고, 크런치베이스 인사이트(CB Insights)는 3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디센트럴랜드 소속 크리에이터들은 디지털 웨어러블을 창조하고 매매하는 활동으로 2021년 한 해 동안 5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재정난으로 2021년 말 태국·오스트리아 부동산 업체에 지분 일부를 매각한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은 디센트럴랜드 패션 구역의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에 자금을 투자하고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아직까지 디지털 패션은 실물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보조 마케팅 도구로 사용되지만, 디지털 패션 위크와 실제 패션 위크의 위상이 역전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다.
" 디센트럴랜드는 실제 패션쇼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 즉 런웨이를 비롯해 쇼룸 오픈,
애프터 파티, 전시 등을 디지털 세계에서 구현하며
유저들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했다. "
1 제1회 메타버스 패션 위크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인 호간.
1,2 에트로는 톡톡 튀는 네온 컬러 의상부터 브랜드의 상징인
페이즐리 패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writer Myung Sujin 패션 칼럼니스트
editor Jeong Pyeong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