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누구든 간에 단순히 내 리스트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범인은 나를 알고 있다. 잘은 모르더라도 약간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아니 확신하는 이유는 멀비 요원이 언급한다섯 번째 피해자 때문이다.”
한여름 더위를 이겨낼 묘안이 마땅찮은 요즘이다. 한편으로 온갖 콘텐츠들은 재미를 무기 삼아 더위에 지친 이들을 유혹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중선書中仙 세계, 그중 긴장의 끈을 잠시라도 놓을 수 없는 스릴러 소설만큼사람들을 깊이 잡아둘 수 있는 콘텐츠가 또 있을까. SF와 판타지 장르 등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재미와 깊이를 선보이고 있는 스릴러 소설들을 소개한다. 한낮의 태양 아래서도 꿈적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몰입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추리소설의 고전에 바치는 헌사,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미국 보스턴의 추리소설 전문 서점 올드데블스. 눈보라가 불기 시작한 2월의 어느 아침, FBI요원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몇 사람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더니 멀비 요원은 매니저 맬컴 커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2004년에 당신이 이 서점 블로그에 썼던 리스트, 기억하세요?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라는 리스트였죠.” 멀비 요원이 말한 리스트는 올드데블스가 추리소설 전문 서점임을 알리기 위해 특별히 만든 리스트였다. 해당 장르 중 고전 작품과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고루 안배해 정성껏 완성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 뒤에 이어지는 멀비 요원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누군가가 그 리스트 속의 작품들을 모방해 실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덫>,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 A. A. 밀른의 <붉은 저택의 비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살의>, 제임스 M. 케인의 <이중 배상>, 존 D. 맥도 널드의 <익사자>가 리스트에 오른 여덟 편의 작품이었다. 모방 살인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단순 모방이 아닌 창의적(?) 확장이었다. 단골손님들에게, 이어 커쇼의 턱밑까지 들이닥친 범인의 대담한 행각은, 단서가 될 만한 새 깃털을 경찰서에 보내는 등 사건 횟수가 늘어날수록 지능적이었다. “메스처럼 예리한 문체로 냉정한 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 작가 피터 스완슨은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서 스릴러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한 반전을 선사한다. 커쇼와 멀비 요원은 범인을 상대하기 위해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반전이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 커쇼와 몇 해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 클레어, 그 외에 여러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반전과 배신은 스릴러 소설만의 극한의 묘미를 보여준다.
2016년 출간된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국내에도 다수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피터 스완슨은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을 통해 추리소설의 고전을 오마주하면서 이와 함께 고유한 작품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커쇼가 감춘 비밀과 범인이 연쇄적으로 모방과 창의적 범죄를 계획하는 일 등은 독자 여러분이 책장을 넘기며 확인하기 바란다. 진실과 배신이 다르지 않다는것, 살인범과 주인공 또한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단서를 쥐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