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로서의 예술가
안젤름 키퍼는 스스로를 연금술사에 비유한다. 그에게 흔한 금속이 금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Anselm Kiefer, Questi scritti, quando verranno bruciati, daranno finalmente un po’di luce (Andrea Emo), 2022 installation view. © Anselm Kiefer Photo: Anselm Kiefer Courtesy Gagosian and Fondazione Musei Civici Venezia
‘독일 현대미술 만들기’ 프로젝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인 1945년 3월, 안젤름 키퍼는 독일 남서쪽의 도나우에싱겐Donaueschingen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인접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Albert-Ludwigs-Universitat Freiburg)에 법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세 학기 만에 예술과로 전향한다. 이후 카를스루에 예술학교(Academyof Fine Arts, Karlsruhe)를 거쳐 1969년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Kunstakademie Dusseldorf)에서 예술 학위를 취득한다.
"키퍼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기록-서사의 방식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미신의 시작임을 인식하고,
그 대신 소설, 시, 예술 작품, 건축, 전래되는 이야기, 미신, 성경, 유대 전통의 <카발라> 경전 등
시각-물질 문화라는 렌즈로 은유화된 과거를 바라본다."
논란과 찬사 속에서
독일, 과거,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portrait. Photo: Georges Poncet
이처럼 키퍼의 작업은 인용과 재인용, 해석, 주석, 변형, 누락의 망안에서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마가레테와 술람미의 정체성에 수수께끼를 더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술람미는 예루살렘 출신 여성을 뜻하는 대명사로 유대 여성상을, 금발의 마가레테는 독일 여성상을 상징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술람미는 수용소에 있던 특정 유대인이며, 마가레테는 수용소에 주재한 게슈타포Gestapo(나치스 독일의 비밀국가 경찰)의 금발 정부情夫라는 해석이다. 또 하나, 첼란이 유대계 독일인이듯 결국 두 여인은 유대인 또는 독일인으로 구분할 수 없는 한 명의 존재라는 해석도 있다. 이는 캔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술람미)는 태운 짚(마가레테)이듯 태운 짚은 생태계에서 결국 살아 있는 밀의 영양분으로서 그 일부가 된다.
집필한 이 글들이 태워져 비로소 한 줌의 빛을 비추리라
Anselm Kiefer, Margarethe, oil, acrylic, emulsion, and straw on canvas, 280 x 400 x 15.3cm, 1981
Image courtesy of artist and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Collection: The Doris and Donald Fisher Collection at th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기존 역사에서 일방적으로 ‘쓰여진 주체’의 재현에 의문을 품고
예술을 통해 그 재현의 반복을 지연시키겠다는 신념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키퍼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연금술사’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작품의 주재료인 납, 셸락, 짚 등에 열을 가해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과정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연금술의 궁극적 목적을 흔한 금속에서 가치가 높은 금으로 변형하는 물질적 이득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그보다 반복되는 시도 속에서 연금술사가 갖는, 자신의 영혼이 제련될 것이라는 믿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결국 키퍼가 작업에서 참고 문헌을 조합하고 직조하는 과정은 물질적 실천이자 기존 역사에서 일방적으로 ‘쓰여진 주체’의 재현에 품는 의문, 예술을 통해 그 재현의 반복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신념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즉 역사와 진실을 대하는 절충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는 그의 개인전 <지금 집이 없는 사람(Wer jetzt kein Haus hat)>이 열리고 있다. 다수의 신작을 공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변화, 부패, 쇠퇴를 통해 존재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오스트리아 시인 릴케의 시와 의미의 가변성과 그 증거들을 수집한 작가의 작품이 가을빛의 어스름으로 조화한다. 역사와 문학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역사와 진실을 대하는 작가의 방법론이 어떻게 공명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ARTISTPROFILE
안젤름 키퍼 ANSELMKIEFER
writer Jon Ihnmi 메인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 초빙 교수
editor 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