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 ISSUE 43
©Peter-Y-Chuang-Unsplash
도시는 신들의 처소일 때 완벽해진다
도시는 하나의 극장과 같다.
건물, 광장, 분수, 첨탑, 동상, 비석, 도로, 영묘 등
다양한 건축물을 배우 삼아 역사라는 연극을 날마다 상연한다.
그 내용은 ‘불멸의 기억’이다.
인류사 첫 번째 도시인 괴베클리 테페는 높다란 언덕에
건축물을 올린 뒤 수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제사하면서
신들의 이야기를 상연했다.
도시가 신전 자체였다. 이것이 도시의 원형이다.
도시를 이룩하는 일은 언제나 시민들의 이야기를
신들의 서사시로 승화하고, 신들의 위대한 모험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극장을 짓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최초의 도시 이름은 신의 도시,
즉 신시神市였다.
천제의 아들 환웅이 3천 명을 거느리고 이 도시를 세웠다.
도시는 신성한 박달나무(神檀樹) 아래에 있었다.
이 나무가 곧 괴베클리 테페 언덕에 쌓아 올린 신전이다.
상징이므로 물리적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수직으로 솟아 있어 인간과 신을 하나로 잇는 일을 하면 충분하다.
거기에서 신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가 되고,
신의 기억은 인간의 기념물이 된다.
신화, 전설, 민담 등 신비한 이야기를 담지 못한 장소나 건축물은 오래지 않아 잊힌다.
도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터전을 초월해
신들의 처소일 때 완전해지고,
건물은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신들의 영감이 넘치는 그릇일 때 비로소 완벽해진다.
개선문, 무명용사의 불멸을 기념하다
현대의 도시에도 신성한 나무가 있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념비, 기념탑, 기념문 등이다.
때때로 교회나 사원의 종탑과 첨탑이 그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우주의 나무(宇宙木)를 만들어낸 것이다.
파리에는 신성한 나무 세 그루가 있다.
파리 여행자는 누구나 이 나무를 만나고 온다.
나무들은 콩코르드 광장, 에투알 광장, 마르스 광장에 각각 있다.
콩코르드 광장은 파리의 배꼽이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민중들은 이곳에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쳤다.
콩코르드 광장에는 혁명의 발명품인 기요틴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요틴은 혁명의 적들보다 정적 제거에 활용되곤 했다.
혁명 동지였던 조르주 당통,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등이
기요틴을 써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극이 일어났다
혼란의 와중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 자리에 올랐고, 혁명 이념을 수출하는 전쟁을 개시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승리해 에투알 광장에 심은 첫 번째 나무, 개선문의 주역이 되었다.
이 웅장한 문은 높이 50m, 너비 45m에 이른다.
단단한 네모로 벽처럼 솟은 이 문 앞에 서면
누구나 위엄에 압도당한다.
1806년 설계를 시작해 1833년에야 완공되었다.
그사이 러시아와 영국에 두 차례 패해 실각한 나폴레옹은
결국 시신으로 이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개선문 지하에는 무명용사 무덤이 있다.
승리의 문은 무명용사의 문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병사를 기념하는 일은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인간 대신 신이 그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는 신 없는 시대, 공동체 전체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애도 행위가 필수적이다.
유한과 무한을 이어주리라는 사회적 약속이 없는 한
아무도 목숨 바쳐 싸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피를 나눈 프랑스인은 개선문을 황제의 불멸이 아니라 무명의 불멸을 기념하는 장치로 바꿈으로써 자유와 평등과 우애의 약속을 지켰다.
오벨리스크, 제국의 덧없음을 상기하다
두 번째 신성한 나무는 개선문이 세워진 지
세 해 후에 콩코르드 광장에 생겨났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다.
이 탑은 본래 룩소르에 있었으나 하나씩 약탈당해
로마, 피렌체, 런던, 카이로, 아부심벨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로마 이래 수많은 제국이 오벨리스크를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위세를 증명했다.
근대 제국인 프랑스와 영국도
이 고대 문명의 상징을 하나씩 얻어냈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라와 이어져 있다.
희랍어로 ‘창’을 뜻하는 이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길고 뾰족해지는 형태로, 네 면에는 각각 신을 찬양하고
왕의 업적을 기록한 신성문자가 새겨져 있다.
프랑스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한 것은
오스만튀르크의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다.
두 나라의 우호 증진이 명분이었다.
1831년 룩소르에서 뿌리째 뽑힌 오벨리스크는
오랜 여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1836년까지 콩코르드 광장을 정비한 후 오벨리스크는
20만 명의 군중 앞에 우뚝 서서 제국의 번영을 보여주었다.
오벨리스크를 콩코르드 광장에 세운 이유는
루이 16세의 처형 기억을 지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장을 제왕의 목이 떨어진 혁명의 장소가 아니라
제국의 위세를 자랑하는 영광의 장소로 바꾸려 한 것이다.
그러나 오벨리스크가 신성을 잃은 채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한 탓인지 권력자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폐지됐다.
4년 후 복위되었으나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하자
민중들은 다시 봉기했다.
그리고 더 이상 프랑스인은 인간 위에 인간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벨리스크는 지금도 스펙터클한 감동을 주지만
생뚱맞다는 느낌뿐, 이 나무에서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탑은 제국의 영광이 아니라
제국의 덧없음을 우리에게 속삭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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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기계 장치의 신이 떠드는 곳
1889년 혁명 1백 주년을 맞아 프랑스인은
마르스 광장에 세 번째 나무를 심었다.
현대의 오벨리스크 에펠탑이다.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세운 높이 300m의
이 탑은 산업혁명의 총화다.
재료도 제작 방식도 철저히 근대적이었다.
산업혁명의 산물인 강철 1만 2천 개를
못 2백50만 개를 이용해 격자형으로 짜 맞추는
몽타주 기법으로 생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기계로 오르내리면서 파리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나무와 이어진 신은 아마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즉 기계의 신일 것이다.
에펠탑은 건축물보다 기계장치에 가깝다.
일찍이 보들레르는 이 신의 목소리가
불멸 대신 유행을 노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도시의 형태는/ 아,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구나.”
시인은 파리의 가속적 변화에 매혹되는 한편
“와글대는 극장, 쿵작대는 오케스트라” 속에서
덧없이 흐르는 인생에 우울을 느꼈다.
흩어지는 순간에서 영원의 흔적을 감지하려 애썼으나,
억지로 붙잡아도 빠르게 싫증 나는 미美 때문에 힘겨워했다.
진지함과 진정함이 영원한 고통을 낳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에펠탑은 24m짜리 송신탑이 덧붙어
방송 전파를 송출하는 기계로 변신했다.
기계의 신은 불멸을 바라는 인간의 열망에 답하지 않았다.
에펠탑이 들려준 것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이었다.
죽 끓듯 변하는 여론이 불멸의 언어를
영원히 공허한 시대가 이로써 확연해졌다.
행복해지려면 우주의 나무가 필요하다
예부터 사람들은 수직 건축물을 세워
신들과 소통함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불멸을 누리려 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는 노래한다.
“엔키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을 건널 수 없기에
나는 내 명성을 기리기 위해 산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네!”
모험을 떠난 길가메시는 무서운 괴물을 무찌르고
커다란 나무를 베어 와 도시의 문을 만들고는
기념비를 세워 자신의 모든 고생을 그 위에 새겼다.
죽어서 없어질 인간이 불후할 이야기를 낳은 것이다.
희랍어로 기념은 아남네시스anamnesis라고 한다.
아나(ana-, 뒤로)와 므네메(mneme, 기억)를 합친 말이다.
아남네시스는 ‘지나간 일을 마음에 불러들이는 일’을 가리킨다.
기념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힘을 빌려
덧없이 사라지는 인생을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일이다.
인간은 기억하나, 신은 기념한다.
기억은 한 사람의 몸에 갇혀 있기에 유한하나,
기념은 신에게 귀속되므로 절대 잊히지 않는다.
기념비, 기념탑, 기념문 등 우주의 나무는
인간의 일을 신의 기억으로 바꾸기 위한 통로다.
동시에 신의 힘을 빌려서 공동체 전체가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불후의 기억을 창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뇌 과학자 에릭 캔들에 따르면
“기억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한
도시의 관문이나 배꼽에 우뚝 솟은 기념물을 보며
공통의 기억을 마련함으로써
우리는 이 덧없는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층 빌딩은 나날이 늘지만
기억을 기념으로 바꾸어주는 건물은 줄어드는 듯하다.
어쩌면 현대인이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영원에 이어주는 불멸의 기억 없이
인간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우주의 나무가 필요하다.
writerJang Eunsu 출판 편집인, 문학평론가
editorJang Jeong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