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 ISSUE 43
하동철, Light 88-31~60(1988), Acrylic on Canvas, 각 90×90cm(갤러리 현대 개인전 전경, 1988)
빛의 화가, 하동철
하동철이 일생 동안 추구한 ‘빛’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빛은 생명의 근원이자 사물의 본질로서 모든 것이 승화된 초월적 세계였다. 그는 모순되고 부조리한 인간의 삶과 대비되는 아름다움과 진실을 빛에서 찾았다. 그렇기에 하동철의 빛의 세계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절대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다. 회화, 판화, 탁본 그리고 입체로 확장되는 그의 작품은 빛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 및 도전의 결과물이며,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빛을 구현하기 위한 조형 의지가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하동철은 194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고향의 자연에서 경험한 생명력과 미국 유학에서 마주한 자연의 웅장함은 빛을 탐구하는그의 작품을 이끈 강력한 동인이었다. 그런 경험은 화면 위에 아스라한 봄날이나 청명한 가을의 빛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Falls of Light>
"나는 항상 신비한 빛의 환상 속에 있다.
그 빛은 환상이라기보다
내게는 오히려 하나뿐인 현실이며
그로 인해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동철, Light 83-E2(1983), Etching, 40×59cm
하동철, Light 98-99(1998), Acrylic on Canvas, 200×200cm
하동철은 삶과 예술의 매 순간 빛을 추구했고, 삶과 예술은 그의 의식 속에서 동일시되었다. 그렇기에 삶의 결정적 사건들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뇌리에 기억되어 작품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미국 유학 시절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찾기 위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맥박, 바로 그 살아 있음의 증거를 화면에 짧은 획으로 그어나갔다고 그는 기억한다. 맥박과 호흡에 집중하며 차분히 그어나간 선과 부드러운 색의 변화로 만들어낸, 망막을 간질이는 섬세하게 조율된 화면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빛을 발견했다고 회고한다. 빛은 그의 예술에서 지극히 관념적인 빛으로, 자연현상을 닮은 빛으로, 사물에서 일구어낸 빛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삶을 통해 체험한 실재였고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부터 발현했다.
회화와 판화, 구조와 확산
하나의 화면에 균질하게 퍼지는 빛을 표현한 그의 회화는 판화의 표현 방식과도 연결되며 화면의 분할과 반복에 의한 다양한 구조로 발전해간다. 직선과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한 순열, 조합, 집합 등의 수학적 조형방법이 하동철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구조적 특징이다.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수직선과 수평선의 치밀함, 한 단계 한 단계 미리 계획된 과정을 따라 만들어진 주도면밀한 화면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판화 기법과 그 치밀성을 공유한다. <Light 83-E2>
박동搏動하는 화면, 근원으로서의 빛
물질(안료)에서 비물질(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동철은 빨강과 파랑의 기본색을 대비시키고, 물에 엷게 희석한 아크릴 물감을 에어브러시로 분무해 점차적인 색조의 변화를 만듦으로써 회화 표면에 무한한 공간을 창안한다. 그에게 흰색과 황색은 빛을 유도하는 색이다. 적색이나 청색 물감으로 균일하게 도포한 캔버스 화면에 주조를 이루는 상반된 색의 물감을 분무해 색의 스펙트럼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2차원의 평면 캔버스에 빛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흰색으로 사라지는 적색과 청색 그리고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축한 빛의 공간을 박동하게 하는 것은 사선으로 반복해 튕겨진 먹선이다. 목수들이 사용했던 이 방법은 화면에 시각적인 진동(작가는 종종 이것을 에너지라고 불렀다)을 만들어내며 빛의 개념으로 확산해간다. “나는 비가 사선으로 내리는 것에 대단한 인상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만 그리던 그림 위에 사선이 추가적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굵은 면실에 검은 물감을 흠뻑 묻힌 뒤 에어브러시로 만들어낸 티 없는 화면 위로 가져가 튕기는 행위는 캔버스 표면을 때리며 울린다. 한 줄 한 줄 옮겨가며 줄을 튕기는 작가의 몸짓과 호흡은 명징한 생명의 증거인 맥박과 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진행되며 화면에 ‘시각적인 흔들림’을 준다
.
<Light 98-99>는 정방형 화면에 수직선과 수평선, 사선이 마름모꼴로 교차한다. 이전 작업에서 흰색의 빛 이미지가 반복적이거나 대칭을 이루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중심에 자리한 적과 청의 색조와 겨루며 흰색으로 산화돼 확장하는 빛 이미지로 각인된다. 그는 화면을 지배하는 구심점에 빛의 근원을 위치시켜 자신이 추구한 빛의 여정이 신비롭고 종교적인 차원으로 회귀되고 있음을 가늠케 한다. 일찍이 타계한 아버지의 상여를 뒤따르며 경험한 신비로운 빛(원색으로 나부끼는 깃발들 사이로 비치는 강렬한 아침 햇살)의 환상이 중첩된다. 그가 작품에 구현한 근원적 존재인 빛은 공간에 충만하게 확산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빛의 세계를 부유浮遊하며 꿈꾸게 한다.
하동철, Light 84-P2(1984), Acrylic on Canvas, 220×763cm(제42회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1986)
ARTIST PROFILE
하동철(HA DONGCHUL) 1942~2006
하동철은 194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 스쿨 오브 아트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64년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여섯 차례 특선을 받았고, 1981년 동아국제판화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했다. 1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베니스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내외 회화 및 판화 전시회에 참여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 문예진흥기금심의위원회 심사 위원을 역임했고 2006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은 현재 강남점 3층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5월 30일까지 타임스퀘어 10층 VIP 라운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writerHa Jin 작가, 경성대학교 미술학과 조교수
editorLim Ji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