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미각을 노래하다
살얼음 냉기에 몸을 떨며 즐기던 음식.
꼬들한 면발, 맑은 국물의 냉면 한 사발이면 더위는 물론 삶의 시름까지 잊힌다.
시원함, 그 이상의 감각으로부터
한자어로 ‘찰 랭冷’에 ‘국수 면麵’. 한마디로 차게 말아 먹는 국수, 냉면. 조선 사람 손으로 쓰고 엮어 펴낸, 역사상 최초의 조선어 사전의 수정 증보판인 〈수정증보 조선어사전〉(1940)은 ‘냉면’의 말뜻을 이렇게 풀고 있다.
“국수를 김칫국 또는 냉국에 말고 저육・편육 기타 여러 가지 약념을 넣은 음식1) .”
김칫국, 냉국 모두 차갑게 마시는 음식이다. 여기 어울리는 사리, 고명 모두 차갑다. 사실 ‘차다’야말로 냉면이라는 음식의 핵심과 특징을 잘 나타내는 감각이다. 더구나 한국인이 냉면에 요구하는 ‘차다’는 ‘시원하다’보다 한참 더한 차가움이다. 구체적으로 면발과 국물에 얼음이며 살얼음이 끼어들어 만들어내는, 이와 목구멍이 시리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차가움이라고 하면 더욱 적합하겠다. 게다가 이 감각 한 가지로 사계절의 냉면을 아우른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먹었을까.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한반도의 어느 겨울날 자연스레 태어나, 한반도의 칡 전분 또는 메밀가루 사리와 손잡고 진화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17세기 이후 함경도에서는 감자 전분이 면의 주재료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북쪽에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고구마 전분이 국수 재료로 사용되었다. 국물에 맛을 더하기 위해 활용하는 김칫국이며 동치미는 저마다의 기호와 수급 형편에 따라 소고기・꿩고기・닭고기・돼지고기 육수 등과도 얼마든지 어우러졌다. 조선 문인 장유(張維, 1587~1638)가 남긴 시 ‘자장냉면紫漿冷 麪 ’을 읽어보자.
“높다랗게 툭 터진 집은 좋다마다/ 게다가 놀랄 만한 별미가 청신하더군/ 자줏빛 감도는 육수에 노을빛 비치고/ 얼음 가루는 눈꽃 되어 엉기고/ 젓가락으로 집어 입속에 넣자 잇새부터 향기로운데/ 옷을 껴입어도 몸에는 냉기가 스미는걸/ 나그네의 시름은 여기서 해소되리니/ 서울 가는 꿈도 나를 더는 괴롭히지 않으리(已喜高齋敞/ 還驚異味新/ 紫漿霞色映/ 玉紛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客愁從此破/ 歸夢不須頻).”
자줏빛 감도는 육수라니, 는쟁이냉이(산갓) 김치의 김칫국 또는 는쟁이 물김치에 사리를 말았을까? 깨끗하고 맑은 소고기 육수 또는 꿩고기 육수에 김칫국으로 예쁜 붉은빛을 들였을까. 아무려나 살얼음은 빠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점잖은 양반과 문인일지라도 냉면 앞에서는 덜덜 떨어가며, 옷 껴입어가며 한 그릇을 해치운다. 이 한 사발에 나그네의 시름도 설움도 스러졌다. 한국인은 예부터 이렇게 냉면의 감각을 만들고, 냉면을 먹어왔다. 세기를 건너서도 냉면은 냉면답게 차가워야 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으면서 해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는 친구들과 냉면을 나누어 먹으며 출장의 피로를 씻어내던 모습을 이렇게 노래했다.
“서관2) 의 시월3) 에 눈이 한 자나 쌓였는데/ 휘장 겹쳐 두르고는 푹신한 담요에 손님을 주저앉히더라/ 벙거지 모양 전골냄비에는 저민 노루고기가 붉고/ 사리 얌전히 올린 냉면에 곁들인 배추절임은 푸르고(西關 十月雪盈尺/ 複帳軟 氍 留款客/ 笠樣溫 銚 鹿 臠 紅/ 拉條冷 麪 松菹碧).”
고기와 함께하는 냉면, 냉면에 김치 또는 배추절임 등의 고명으로 맛을 배가하는 방식, 담요에 앉아 기어코 차디찬 육수와 사리를 즐기는 일상이 생생하다. 정약용과 동갑내기 서울 미식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국수다. 면의 품질은 평안도 지방 것이 최상이다. 차게 조리한 냉면이 한층 맛있다. 서울에서 차게 만 것은 따듯하게 만 온면만 못하다. (냉면을) 며칠 사이에 한 번이라도 먹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도 했다. 역시 서울 멋쟁이로 유명 한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자신의 책 〈동국세시기〉에서 냉면을 동짓달의 별미로 기록하며 이렇게 말했다. “메밀국수에 무김치와 배추 김치 말고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 평안도 냉면이 제일이다.”
냉면에 대한 인식, 시대에 따라 변화하다
보신 대로다. 북쪽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냉면은 한층 ‘차디찬’ 매력을 뽐냈다. 그러다 19세기 말을 지나 인공적인 냉장과 냉동 기술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부터 현대의 사계절 냉면, 더구나 한여름 냉면의 역사가 새로이 시작되었다. 식민지 시기의 <조선중앙일보>(1936년 6월 4일 자)는 뜨듯한 아랫목에서 덜덜 떨며 즐기는 냉면의 미각을 지나간 시대의 미각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러고는 부연했다. “냉면의 미각은 아무래도 초여름! 새로 심은 배추가 너울너울 밭을 건너가는 바람에 나부끼고 붉은 무가 제법 어린애 팔뚝같이 자라날 즈음에 (중략) 시금시금한 촛국4) 을 사발에 듬뿍 뜬 뒤에 풋김치를 얹고 젓가락을 휘 휘두르다 후룩후룩 들이마시고 사발 냉수를 들이켜는 맛이야말로 냉면 국수의 세계적인 진가.”
한편 한국 음식학의 선구자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은 자신의 식민지 시기 저서에서 겨울 냉면과 여름 냉면을 구분해 설명했다. 아울러 쩡한 겨울 동치미를 전제로 ‘동치미냉면’을 따로 설정했다. 대도시와 교육 영역의 설명 밖에서는 막국수 문화가 면면했다. 가장 소박하고 수수한 메밀 사리에 김칫국이나 동치미쯤을 더하거나, 가장 간단한 비빔장쯤을 더해, 막 해서 막 먹는 막국수는 왜 냉면의 한 갈래가 아니란 말인가. 요컨대 냉면은 한반도의 강추위, 전근대 제면 기술, 기분 좋은 산미가 감도는 김치 및 그 국물, 다채로운 고명 및 양념장 등이 서로 자연스레 얽힌 가운데 태어난 음식이다. 냉면은 이윽고 조선 후기, 조선 말기, 식민지 시기,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한 번 더 진화한다.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주는 평양냉면, 비빔장에 감자(또는 고구마) 전분 국수를 비비도록 한 함흥냉면’ 하는 인식은 해방 이후 북녘의 이주민이 남녘에 정착하면서 생긴 것이다. 평안도, 함경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즐겨 먹는 냉면도 그저 ‘국수’라고만 불렀다. 식민지 시기, 평안도식 냉면이니 평양식 냉면이니 하는 표현이 있었지만, ‘평양냉면=메밀 사리+맑은 육수’, ‘함흥냉면=감자 및 고구마 전분 면+비빔장’ 하는 공식이 남한에서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다.
‘말하고’ 싶은 음식
맑고 심심한 육수와 어울린 고운 사리에 우아한 꾸미와 고명을 올린 냉면도 냉면의 한 갈래다. 붉은 비빔장에 메밀 사리 또는 녹말 사리를 비비는 냉면도 냉면의 한 갈래다. 서울 창신동, 제기동, 청량리 일대에서 태어난 붉고 매운 육수에 만 냉면도 냉면의 한 갈래다. 인천 동구 화평동에서 최근에 태어난 ‘세숫대야냉면’도 냉면의 한 갈래다. 부산에도 대구에도 군산에도 고유의 냉면집이 있다. 또는 지역에 따라서는 젓국으로 육수의 간을 맞추는 방식, 뽀얀 육수를 쓰는 방식, 메밀가루를 기본으로 해서 칡 전분을 더해 사리를 뽑는 방식 등이 저마다 오롯하다. 모두 개성 있는 음식이고, 모두 즐거운 이야깃거리다. 장유의 시에서부터 심노숭의 냉면 감각, 그리고 식민지 시기 언론에 실린 냉면 이야기 등은 그것대로 즐길 만한 세계다. 그 속에 메밀가루와 칡 전분을 놓고 최선을 다한 역사가 깃들어 있다. 감자와 고구마가 바다를 건너오자 이를 변용해 기어코 냉면 사리를 뽑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냉면의 사리와 육수가 뿜는 형상과 질감, 풍미는 이 기나긴 연대기에서 태어나고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삶은 달걀 또는 지단, 무김치, 배추김치, 흩뿌린 실파, 고춧가루, 붉은 비빔장 등으로 마침표를 찍은 냉면의 꾸밈새와 맵시 또한 그 자체로 보고 삼키며 즐길 만한 세계다. 냉면 앞에서 나의 감각은 어디를 향하는가? 또한 묻고 답하기 즐겁지 아니한가.
1) 당시의 표기를 그대로 살렸다. '저육'은 돼지고기 편육, '편육'은 소고기 편육, '약념'은 양념이다.
2) 황해도와 평안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
3) 음력 시월, 입동표쓰이 든 달이다.
4) 여기서는 식초를 친 냉국 및 시큼한 김칫국을 많이 섞은 육수를 아우른 의미다.
메밀 면의 풍미를 전하다
서관면옥 교대 본점
면수로 메밀물이 나오는 순간, 순면을 고집하는 맛집의 오라가 느껴졌다. 서관면옥식 평양냉면의 별미는 메밀 면의 곡향과 육수의 육향이 이루는 조화에서 비롯된다.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56길 11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문의 02-521-9945
권희승 셰프의 면과 육수
봉밀가
평양냉면 맛집으로 항상 거론되는 비결은 권희승 셰프가 준비하는 면과 육수에 있다. 시간과 정성을 중요시하는 철학 그대로 봉밀가의 메뉴는 한우 양지머리부터 한약재에 이르는 식재료를 5시간 끓여내 완성한다. 두꺼운 면 또한 차별화되는 포인트.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664 건설빌딩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30분
문의 0507-1360-2305
심심한 맛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판동면옥 여의도점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냉면은 식감이 조금 거친 면과 고기 풍미의 육수로 간이 조금 있는 편. 평양냉면의 심심한 맛이 식상하다면 시도해볼 만하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37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문의 0507-1477-8301
1977년부터 북한에서 운영한 평양냉면 전문점 ‘설눈’. 시그너처 메뉴 고려물냉면은 메밀 껍질을 함께 갈아 만든 면이 고소함을 배가한다. 국물에 동동 띄운 잣은 육수에 고소함을 더해 이색적 맛을 선사한다.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46길 20-7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토요일 휴무
문의 02-6959-9339
초여름만 되면 유독 평양냉면 맛집이 여기저기 눈에 띄지만, 평양면옥의 전통평양냉면이야말로 심심하고도 담백한 평양냉면 맛의 기준이 된다. 특히 전통평양비빔냉면은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아 깔끔하다.
주소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176
신세계백화점 11층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문의 02-3479-1014
70년 넘는 역사의 함흥식
오장동흥남집
1953년 노용언 할머니가 문을 연 이래 오장동흥남집은 지금까지 오장동 일대에서 함흥냉면 대표 맛집으로 꼽히며 명맥을 이어왔다. 회비빔냉면과 고기비빔냉면, 섞임냉면을 먹어보자.
주소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 114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30분
문의 02-2266-0735
깊은 사골 육수가 준 힌트
진함흥면옥
브레이크 타임이 한창인 오후, 어느 손님이 “냉면과 육수를 포장해달라”며 들어왔다. 과연 육수 한 컵을 들이켜니 단골들의 애정 어린 성화를 인증하듯 깊은 맛의 사골 국물로 속이 든든해진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1-337
영업시간 오전 11시~ 오후 8시 30분
문의 02-703-0930
젊은 세대의 함흥냉면
힘냉면록
성수동에 위치한 힘냉면록은 냉면을 먹고 힘내라는 뜻과 대표 정승록의 이름을 합쳐 만든 상호명에서 부터 가게 외관, 내부 식기 등 곳곳에서 고유의 철학이 드러난다. 국내산 소고기 양지와 동치미를 얹은 물냉면을 먹어보자.
주소 서울시 성동구 상원1길 41 1층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문의 0507-1406-9706
마포구 일대를 오가는 많은 이에게 함흥냉면 맛집을 물어보면 일순위로 알려주는 곳. 감자 전분으로 만든 면의 매끈한 식감과 시원한 육수의 물냉면, 그리고 매콤한 회무침을 얹은 회냉면은 꼭 맛보아야 할 시그너처 메뉴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맛로 6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10시
문의 02-334-3545
1953년 첫 오픈, 2017년부터 〈미쉐린 가이드〉에 매 년 등재, 그리고 최근 배우 이순재가 최애 식당으로 언급하며 화제가 되었다. 오랜 시간 변치 않는 맛의 냉면과 부드러운 수육이 인기다.
주소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 108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문의 02-2267-9500
매운맛 6단계를 즐길 수 있는
깃대봉냉면
과거 창신동에 있었을 적, 냉면집 앞에 있던 태극기 게양대가 간판 역할을 해 손님들이 가게 이름을 ‘깃대봉냉면’으로 불렀다. 냉면 메뉴는 참깨와 오이를 수북이 얹어 새콤하고 고소하며, 여섯 가지 단계로 매운맛을 선택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400 베네치아메가몰 2038호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30분
문의 02-762-4407
청양고추를 썰어 곁들이는
아저씨냉면
인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거리가 형성되는 데 큰 공을 세운 ‘원조 세숫대야 냉면’ 맛집. 냉면을 시키면 청양고추가 한 움큼 같이 나온다. 어슷 썰어 곁들이는 청양고추야말로 맛을 좌우하는 포인트.
주소 인천시 동구 화도진로91번길 27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
문의 032-765-3553
동아냉면을 검색하면 서울 이태원부터 홍익대, 숙명여대 인근 등 꽤 많은 지점이 나오는데, 보광동이 1호점이다. 현재 젊은 세대에도 보광동 동아냉면의 매운맛을 콕 집어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 5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
문의 02-796-2796
황해도 해주 출신의 사장님 부부는 무려 8년에 걸쳐 만든 특제 소스를 사용한다. 해주냉면의 매운맛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법한 소스다. 냉면이 나오면 식초, 겨자, 설탕 두 스푼을 취향껏 첨가해 먹어보자.
주소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7길 8-16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문의 02-424-7192
매운 냉면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맛집. 한우 소뼈를 활용한 육수가 매운맛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신선함을 제일 중요시한다’고 적혀 있는 가게 메모처럼 깔끔한 맛을 낸다. 국물을 삼키면 청량한 뒷맛이 남는 이유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지봉로5길 8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9시
문의 02-743-7285
writerGo Young 음식 문헌 연구가
editor Kim Minhyung
photographer Sim Yunsuk
stylist Kim Jin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