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을 말하다
2019/12 • ISSUE 20
writorJang Dongsuk 〈뉴필로소퍼〉 편집장, 출판평론가
관객모독
페터 한트케/민음사
욕설에 숨겨진 인간을 향한 일침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은행나무
우주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
허구와 현실이 중첩되는 가상의 공간 ‘태고’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곳’이다. 이곳은 선악의 구별이 없는, 절대 고독의 경지처럼 느껴진다. 태고에서 니에비에스키 가족, 즉 미하우와 게노베파, 미시아와 이지도르, 아델카 등은 이웃은 물론 외부인들과 더불어 삶을 공유한다. 물론 그 삶에는 평화뿐만 아니라 다툼과 시기, 질투가 횡행한다. 84편의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작품의 등장인물,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개별적 존재로 삶을 이어가며, 다시 태고, 곧 우주의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 존재와 구원에 대한, 난해하면서도 진지한 탐구를 담았다.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민음사
일과 삶, 그 경계에서
스티븐스는 영국 귀족의 장원에서 집사로 살며, 그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다. 1930년대 격동의 영국에서, 장원의 주인에게 충성함으로써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는 사랑이 다가와도,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해도 장원을 지켰다. 세월이 흘러 영국은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장원의 새 주인은 휴가를 권한다. 스티븐스는 과거의 사랑에게 다시 장원에서의 일자리를 제안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그 길 위에서 삶을 반추하고, 사랑마저 다시 떠나보낸다. 시대와 조응하며 산다는 일의 무거움이 무엇인지 작가는 작품 내내 웅숭깊게 풀어낸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문학동네
전쟁으로 무너진 여성의 삶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닌 르포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였다. 그는 전쟁을 겪은 여성들을 인터뷰해,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얽히며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여성들의 절절한 목소리로 가득하다.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았던 여성, 병원에서 온갖 참상을 겪고 돌아온 여성 등 이들의 목소리는 마치 하나의 지옥도와 같다. 그런데도 이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 그 전력을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 죽음이 맴도는 전쟁터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이 중간중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