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어윗은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장면을 만드는 사진가였다. 그가 찍은 세계는 동물과 어린이, 남자와 여자, 그리고 로맨틱하고 유쾌한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현안을 다룰 때도 어윗의 사진은 분노보다는 헛웃음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것은 그의 큰 장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이한 점이기도 했다. 분명 세계는 어느 정도 고통과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거듭 따뜻한 모습을 발견해내고야 마는 사진가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1960년 여름, 엘리엇 어윗은 사우스 네바다의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ts)>의 촬영장을 취재했다. 영화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존 휴스턴이 감독을 맡았고,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극작가 아서 밀러가 시나리오를 썼다. 당대 최고의 배우 클라크 게이블과 할리우드에서 가장 지적인 배우라는 몽고메리 클리프트, 그리고 마릴린 먼로가 주연이었다. 그곳에서 엘리엇이 찍은 사진은 하나같이 즐겁고 유쾌한 느낌을 풍겼다.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클라크 게이블과 아름다운 마릴린, 진지한 표정의 감독, 격렬하지만 즐거운 촬영 현장의 에피소드가 가득했다.
하지만 실제 촬영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엘리엇 어윗과 같은 매그넘 에이전시 소속이자, 함께 현장에 파견된 여성 사진가 잉게 모라스가 찍은 사진에는 그런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었다. 감독은 끊임없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매일 밤 도박을 한다. 마릴린 먼로는 이미 약물중독 상태에 아서 밀러와의 연인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모두가 미움과 불안에 허우적거린다. 엘리엇 어윗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하며 털어놓았다. “마릴린이 너무 망가져 있었다. 거의 촬영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 LA로 도망쳤다. … (중략) … 하지만 마릴린을 나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포토제닉하다는 것은 그녀가 지닌 명성의 중요한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웃음을 찾은 이유가, 어윗이 고통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엘리엇 어윗은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파리로 이주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족의 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심상치 않은 반유대주의의 분위기를 피해 어린 엘리엇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이주했고, 다시 배를 타고 뉴욕으로 떠났다. 엘리엇 어윗은 그 당시를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1939년 9월 1일에 뉴욕으로 떠났고, 9월 3일에 전쟁이 터졌어. 아무 배나 마구 격침하는 독일 U-보트가 바다에 가득했지.” 어머니는 엘리엇이 열두 살 때 이혼했고, 그가 열여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자식을 버려두고 살길을 찾아 뉴올리언스로 갔다. 혼자 남은 엘리엇은 자신의 힘으로 대학에 입학해 사진과 영화를 전공했다. 졸업한 후에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이런 그가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세계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아름답고 유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일종의 기이한 결기에 가까워 보인다. 고통과 슬픔이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면, 웃음과 로맨틱한 순간 역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슬픔을 참혹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달콤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