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의 염주念珠와 가톨릭의 묵주默珠는 비슷하게 생겼다. 둘 다 구슬을 끈으로 꿰어 묶은 것이다. 염주는 구슬이 1백8개다. 백팔번뇌를 마음속에서 하나씩 지우며 구슬을 넘긴다. 묵주는 구슬이 몇 개일까. 묵주를 늘 손에 감고 사는 가톨릭 신자도 그것을 잘 모르는 듯하다. 59개다. 묵주는 작은 구슬 10개마다 큰 구슬이 하나씩 모두 5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원 밖에 작은 구슬 3개와 큰 구슬이 하나 더 달려 있다. 그 끝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있다. 묵주의 이런 형태는 16세기에 정해졌다고 한다.
묵주는 묵주기도를 할 때 사용한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개신교 신자인 나는 가톨릭에 무지해 묵주기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읽는 자료만으로는 부족해 평화방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몇 편 보고 나서야 그 복잡한 구조와 의미를 대강 알게 됐다. 개신교의 기도는 다채롭고 일상적이다. 연말이 되면 수험생들이 입시를 잘 보게 해달라고, 야유회 날에는 핸들을 잡은 운전기사의 손을 주님께서 꽉 잡아달라고 빌기도 한다.
이렇게 분방한 기도에 익숙한 나에게 묵주기도는 매우 갑갑하게 느껴졌다. 정해진 기도문을 반복 암송한다는 것이 그랬다. 순서를 나열하면 이렇다. 성호를 긋고 십자가에 입 맞춘 다음,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3회, 영광송, 구원의 기도, 신비 1단을 암송하고 다시 주님의 기도, 성모송 10회, 영광송, 구원의 기도, 신비 2단, 다시 주님의 기도…. 구슬이 59개인 묵주를 한 바퀴다 돌리면 주님의 기도, 영광송, 구원의 기도는 6회씩, 성모송은 53회를 반복하게 된다. 약 30분이 걸린다.
이 복잡하고 긴 기도를 하는 동안 묵주는 순서와 횟수가 헷갈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 성물聖物이 고색창연한 가톨릭의 상징 정도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지극히 실용적 도구다. 묵주기도는 같은 내용을 반복 암송하기 때문에 숨 가쁘게 읽어치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기도문 내용을 묵상默想하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묵주다.
묵주기도의 핵심은 ‘신비’다. 묵주의 큰 구슬에 이를 때마다 묵상하게 되는 15개의 신비는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의 행적이다. 수태고지에서 시작해 예수가 성장하는 환희의 신비,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는 고통의 신비, 부활하는 영광의 신비가 각 다섯 가지로 이루어졌다. 15개 신비 전체를 묵상하려면 묵주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 그사이 성모송은 1백50번 넘게 암송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