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신이 20대 시절 모로코 여행을 하면서 지역 특산품으로 나온 줄무늬 모양 패턴 천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추상화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칸딘스키가 ‘위대한 추상화’로, 몬드리안이 ‘추상적 사실화’로 표현했던 현대 회화의 과제를 션 스컬리는 새로운 차원의 자의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션 스컬리는 기하학적 구조에 색상을 통해 개성을 부여하고, 그것에 인간성을 다시 한번 부여했다. 미술평론가 도널드 커스핏Donald Kuspit은 션 스컬리에 대해 “그는 추상을 가장한 휴머니스트 거장이다. 그의 작품들은 영적 깊이가 있으며, 최고의 거장 작품들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중요성이 있다. 스컬리 작품의 영적 경험은 구상 회화의 형상보다 오히려 뉘앙스와 채도를 통해 전달된다”고 평한 바 있다.
최근 베니스에서 열렸던 개인전도 션 스컬리의 휴머니스트적인 면모에 힘을 실어줬다. 일반적인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16세기에 지어진 베네딕트 성당에서 열린 이 전시의 제목은 (2019. 5. 8~10. 13)이었다. 대성당 내부 곳곳과 외부 정원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 조각, 드로잉 등의 다양한 작품이 설치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Opulent 121 Ascension’은 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높이가 10m가 넘는 대형 작품이 성당 중앙의 돔 아래 설치되었다. 이 작품을 마친 스컬리는 “영혼에서 육체로, 그리고 육체에서 영혼으로 향하는 여정(The journey from the spiritual to the physical, and from the physical to the piritual)”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장소에서, 대가인 스컬리 역시 미술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이프, 인간의 감정을 응축하다
사실 그에게는 큰 아픔이 있었다. 션 스컬리의 대표작이자 스티븐 파딩이 지은 책 〈죽기 전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에도 소개되어 있는 작품 ‘폴Paul’은 다름 아닌 먼저 떠나보낸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양쪽 패널의 호위를 받으며 기립해 있는 부분 패널에 대해 이 책에서는 “울림이 큰 스컬리의 회화에서 형상에게 맡겨진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형태와 색채에는 대지와 감정의 현존이 흐르고 있다”고 적혀 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검은색, 흰색, 붉은색으로 된 간결한 스트라이프로 표현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폴’을 포함한 션 스컬리의 작품이 보는 이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것은 벽면으로부터 돌출된 부분 패널이 일반적인 그림과 다르게 조각이나 건축 같은 입체감을 주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지하 1층 중앙 계단에 걸려 강렬한 존재감을 주는 ‘거울’ 역시 마찬가지다. 가로 182cm, 세로 244cm의 큰 사이즈도 그렇지만, 이 그림의 너비는 일반적인 캔버스 작품보다 훨씬 두꺼운 14cm에 달한다. 무게도 육중하다. 왜냐하면 한 폭의 그림에 4개의 캔버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위와 아래로 각각 2개로 절반씩 나뉜 상태로, 윗부분의 캔버스가 가장 많이 돌출되어 있다. 또 아랫부분 캔버스 안에는 가로, 세로 50cm가량의 정사각형 캔버스 2개가 꽉 끼어 맞춰져 있다. 겉으로 볼 때와 달리, 작품 뒷면을 보면 캔버스의 지지대가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예술가의 마음을 들춰보는 것과 같다. 동시에 작업실에서 작가가 다양하게 채색된 수직 수평 요소를 감안하면서 캔버스를 이리저리 맞추며 엄청난 육체적 노동을 수행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