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발길은 결코 정원을 놓치지 않는다. 낯선 도시를 지나다 잘 꾸민 정원을 만나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떠올려보라. 한순간 호흡을 멈추고 꿈꾸는 눈길을 던지며 멈추어 서거나 어느새 다가서지 않던가. 조금만 짬이 있어도 가만히 앉거나 선 채 황홀한 듯 바라보고 홀린 듯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던가. 어떤 도시든 가장 이름 높은 정원은 그곳 사람들의 꿈을 최대한 집약한 절정의 공간이다. 만약 외국에서 손님이 찾아와 서울에서 단 한 곳만 데려가야 한다면, 창덕궁 비원으로 가야 한다. 서울에 그보다 아름다운 곳은 있을 수 없으니까. 여행자의 발길이 어디든 저절로 정원을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어느 정원에 갔던가. 베이징의 이화원, 교토의 은각사, 이스탄불의 토프카프, 바르셀로나의 구엘, 그라나다의 헤네랄리페, 세비야의 알카사르, 로마의 포로 로마노, 피렌체의 보볼리, 비엔나의 쇤브룬, 파리의 베르사유, 런던의 켄싱턴 가든,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등. 수많은 정원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하나하나 장소로 구현한 한 폭의 그림이요, 공간으로 써 내려간 한 편의 시다.
처음으로 정원의 미학을 느낀 곳은 20대 중반에 찾은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 중정이다. 이 미술관이 존재하기 전까지 LA는 할리우드와 골드러시로 상징되는, 고급문화를 모르는 천박한 도시였다. 저 멀리 태평양까지 탁 트인 전망이 우울한 마음을 씻어주는 가운데, 물과 돌과 나무가 교묘한 조화를 이루는 정원이다. 중앙 호수 위에 미로처럼 식재된 꽃나무를 보고 말을 잊었던 기억이 난다. 만발한 꽃들의 화려한 붉은빛과 투명하게 물결치는 호수의 파란빛이 어우러진 풍경화였다. 건물 속에서 이제 막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한 수많은 명화를 보고 난 참인데, 자연이 그 자체로 작품을 이루어 아름다움을 도발하고 있었다.
피렌체 보볼리 정원은 르네상스 양식이다. 이탈리아 특유의 정원답게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피티 궁궐 건물 뒤쪽에 세 단계로 계단식 평지를 조성한 후, 꽃과 나무와 풀을 적절히 심어 풍광의 조화를 꾀하고, 곳곳을 조각상으로 장식해 인공미를 더했다. 바깥으로는 숲길을 조성해 정원을 아늑하게 하고,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정원의 한가운데 있는 동상 근처 의자는 오래 머무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늘이 평안한 안식을 제공하고 바람이 꽃 냄새, 풀 냄새를 몰아오는데, 가까이는 잘 꾸민 정원이 눈을 사로잡고, 멀리는 넓게 펼쳐진 피렌체 시내가 여행의 기억을 한껏 부풀어오르게 한다.
베이징의 이화원에서는 누구나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곤명호에 일단 압도당한다. 항저우에 있는 이름난 호수인 서호를 그대로 옮겨놓온 듯 재현한 이 인공 호수의 드넓은 수평선이 고요한 바탕(靜)을 이루고, 흙을 쌓아 만든 인공 산인 만수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솟아난 정자와 전각과 다리 등 역동적 수직선(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완벽한 중국 정원이다. 앞에는 물을 두고 산을 등지도록 인공으로 구현한 별천지다.
산수만은 아니다. 꽃을 심어 나비를 부르고, 나무를 심어 새를 깃들게 했다. 인간이 빠질 수 없다. 호숫가를 따라 수백 미터 이어지는 회랑에는 중국 고전소설 속 명장면이 수만 점이나 생생히 그려져 있다. 산책을 즐기다 지루해지면, 이야기꾼을 불러 그림 속 장면을 낭독하게 했으리라. 침전 뜰 앞에는 3층짜리 극장도 갖추었으니, 마음이 더욱 동하면 기꺼이 공연을 즐겼을 것이다. 어떻게 더 완벽한 삶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