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나는 단골 음반 가게에서 레코드를 고르고 있었다. 클래식에 막 입문해 열정적으로 빠져들 무렵이었다. 가게에 손님은 나 혼자였고 주인장은 새로 들여온 음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음악은 아까부터 흐르고 있었다. 교향곡인 것 같은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살짝 들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악장이 바뀌고 한 소절이 흘렀을 때, 음반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시간 여행을 한 듯 나는 어린 시절의 한순간으로 돌아갔다. 흑백 TV는 장례식을 중계하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의 대형 초상화가 차에 실려 천천히 지나가고 국화꽃을 덮은 운구차가 뒤를 따랐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였다. 그분이 죽다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흰 상복을 입고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 TV에서는 느릿한 음악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음반 가게에 있고 음악은 스피커에서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음악이냐고 물어보니 주인장은 음반 재킷을 보여 주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베를린필하모닉 취임 연주 실황이었다. 주인장은 새로 나온 레코드판이라며 지금 듣고 있는 것은 3악장이라고 했다. 나는 이 음악을 옛날 그 장례식 때 들었다고, 기억나느냐고 물었으나 주인장은 그랬었나, 할 뿐이었다.
무거운 발걸음 같은 그 음악을 얼마 뒤에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또 들었다. 해외에서 모셔온 애국지사 유해를 안장하는 의식에서 의장대 나팔수는 귀에 익은 그 선율을 연주했다. 음반 가게에 이어 두 번째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말러의 음악이 우리나라 장례식에 널리 쓰이는 것일까, 다른 나라도 그런가.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음악이 중학생 때 소리 높여 합창하던 노래였다는 사실을. 1970년대 중학교에서 는 영어 돌림노래를 불렀다. ‘브라더 존’이라는 노래였다. 짧은 가사는 지금도 기억한다.
“Are you sleeping, (반복), brother John, (반복), Morning bells are ringing, (반복), Ding Dong Deng, Ding Dong D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