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수묵 흐름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남도예술, 그 속에서 전통의 맥을 이어 받아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담아오고 있는 남리(南里) 허임석 씨의 개인전입니다.
허임석 씨는 전통성과 인문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엄격한 도제식 교육을 받은 작가입니다. 한국문인화협회를 창설하고, 우리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금봉 박행보 선생 아래서, 대학을 입학하기 전부터 먹을 갈고 필을 다듬으며 전통 수묵에 대한 기본부터 착실히 다져왔습니다. 묵과 선의 여백을 이해하기 위해, 먹빛을 찾기 위해, 힘든 수행의 길을 걸어 온 것입니다.
기존에 문인화를 비롯해 실경 위주의 전통 산수화뿐만 아니라, 가장 표현하기 어렵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생활 속 풍속화를 주로 담아왔습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역시 일상 속 여유의 미학이 담긴 작품 30여 점입니다. 기존 작품이 여백의 미를 한껏 살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명상적 시간, 무념의 순간을 제공했었다면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여백이 채색으로 채워졌습니다. 주변 일상의 미감과 생활사들이 먹으로 그려지고, 초록빛의 짙은 채색이 계절감을 느끼게 해주고, 화폭 한 곳에서 넘치는 재기와 익살스러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냅니다.
문인화의 정체성과 수묵의 현대적 번안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절묘하게 유지해 가고 있는 허임석 씨의 작품을 통해 필묵의 향기를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