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든 그림 그리는 화가
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농부의 심성을 가진 화가 박문종의 초대전을 개최합니다. 그는 한지, 신문지, 골판지 등에 먹과 흙으로 형상을 그린 후 붓으로 점을 찍거나 막대로 구멍을 뚫어 주변의 자연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사를 표현합니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고된 행위와 작품 속 이미지들은 마치 반복적인 농사일인 모내기와 흡사한데, 그는 이처럼 농사 짓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듯이 농사 짓는 화가입니다.
연진회(鍊眞會)에서 서화의 기초를 익힌 박문종은 호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한 초석을 닦고 이후 줄곧 광주와 전남 인근에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땅과 가난, 노동과 여성을 다룬 비교적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선보였고, 1990년대 초부터 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작품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치열한 고민과 ‘농촌의 현실, 땅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킨 조형적 탐구였습니다. 농촌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담양의 한 마을로 이사한 그는, <농경도>를 시작으로 <땅>, <황토밭>, <얼굴>, <담양사람> 등의 연작을 통해 농경문화에 기반을 둔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연작의 대표작들 뿐만 아니라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써놓은 <영산강>, <전라남도전라북도> 등의 대형 신작들이 함께 전시됩니다. 영산강 주변의 지명들을 나열하고 그곳에서 농사짓는 농부를 형상화한 작품 <영산강>은 “담양이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지만 사람 사는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좋다”는 그의 말처럼 담양 지역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반복적으로 화면 가득 채운 작품 <전라남도전라북도>는 황토물이 자연스럽게 스민 구겨진 종이 위에 쓰여진 글씨가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자유분방한 멋을 풍깁니다.
“동시대인들과 교감과 소통이 없으면 죽은 예술이고 예술행위는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생각처럼 박문종의 작품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대상과 장소를 그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관람객이 그림 안의 표정을 읽어내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작업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여전히 자연과 사람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질문과 고민이 녹아 있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꾸밈없이 소박한 남도의 땅을 닮은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생명의 활기로 아름다운 계절 봄에 개최되는 ‘박문종 초대전 - 영산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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