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철, 광주신세계갤러리에 <바람, 風>이 불어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람을 다양한 시각으로 사진과 영상작품으로 표현한 라규채, 박상화, 박일구, 이이남, 임창민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요소 중 하나인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사람마다 바람을 형상화하는 이미지 역시 서로 다릅니다. 사진 속에 포착된 찰나의 순간에서 바람이 연상되기도 하고, 영상 속 물체의 움직임에서 바람을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주변의 대상을 통해 형상화된 바람은 다양한 상징적인 의미와 은유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영상미디어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박상화는 광주의 무등산을 소재로 한 가상공간을 만듭니다. 스크린에 투사된 변화무쌍한 풍경의 이미지와 소리 사이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다양한 감각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등의 숲은 관람객을 따라 움직이는 사계절의 이미지로 재구성되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삶의 쉼터와 같은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정적인 실내공간을 찍은 임창민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사진 속 창문 너머로 움직이는 영상이 보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숲길의 미묘한 변화들을 담은 풍경이 보이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적막은 오히려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영상 속에 담긴 미세한 자연의 움직임이 잠들어 있던 관람객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이이남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흑백의 대나무가 자신의 색깔을 되찾기도 하고, 하얀 눈에 덮여 그 모습을 다시 감추기도 합니다. 디지털 영상으로 새로 태어난 고전회화를 통해 옛 것에 대한 새로운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라규채의 사진 속 대숲에서 일렁이는 바람의 흔적은 흩뿌려진 물감과 같습니다. 물질의 본질이란 본래 진동과 같은 흐름에서 볼 수 있다는 작가의 작품에는 선명한 초록빛 파동들로 가득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적 생명력을 보여주기 위해 대상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일렁이는 파도를 멀리서 프레임 속에 담은 박일구의 사진은 마치 회청색의 색면추상 작품과 같습니다. 시원한 푸른빛 남도바다의 기록 사진에 담긴 흩날리는 바닷물결의 형상이 더운 날씨에 청량감을 전해주는 동시에 남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숨결을 담고 있습니다.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솔바람,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 등 다른 계절과 시간, 장소에서 만났던 바람을 전시장으로 옮겨왔습니다.작품 속에서 바람의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작가의 정신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며시 불어와 우리에게 상쾌한 기분과 마음의 여유를 선사하는 바람을 경험해 보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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