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거나 뜨기 전의 시간은 사물에서 일상성을 걷어내고 자연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내어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태양이 빛나는 중천이나 캄캄한 암흑의 시간대에는 불가능한 신비한 상상이 가능하기에 흔히 사진가들의 시간이 되곤 합니다. 밤과 낮이 살을 섞는 이 시간이 만들어낸 풍부한 색채감의 대기 속에, 막막하거나 적요한 하늘과 바다, 숲을 배경으로 대지에서 뽑아 올린 빛을 반짝이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을 것만 같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풍경, 대명천지 현대인이 망각한 머나먼 신화 속의 풍경입니다.
디지털 사진이 일반화된 이 시대에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사진의 변조가 사진의 진정성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의지를 시각화할해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바탕 때문에복제와 인용된 이미지의 남용이 과잉 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정록은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가공 기술에 손 벌리지 않고 수공적인 노력으로 얻어지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주력합니다. 그가 만들어낸 몽상적 풍경은 순수한 대기 속에서 성찰적 노동의 행위가 자연과 일체가 되어 만들어낸 아날로그적인 기록입니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팔레트로 빛의 농담을 조율하여 이미지를 얻어냅니다.이정록은 대지에 펼쳐진 자연광, 섬세하게 제어된 스트로보와 서치라이트를 물감 삼아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사진의 장르적 본질에 가까운 ‘순간성’에서 멀리 나아간 이 창작방법은 장노출에 담긴 섬세한 여명과 수백분의 일초에 명멸하는 빛을 함께 잡아냅니다.<사적 성소>나 <신화적 풍경>, Decoding Scape등 10년 가까이 진행해 온 이 작업방식은 순간순간을 이어 지속하는 자연의 호흡이나 불멸성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갑니다.
137억 2천만년전 우주의 시원에 비한다면 100만년 인간의 시간은 티끌 같습니다. 박물관과 도서관에 쌓아놓은 어떠한 지식과 지혜로도 그 신비한 실체를 보여주지 못할 것은 자명합니다. 우주와 대지를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인간의 숙명이 탄생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현대문명의 일상 속에서 그런 숙명을 종종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정록에게 있어 제주도는 그러한 인간의 숙명을 일깨워주는 공간입니다. 우리나라 땅에서 지구의 속살과 가장 가까운 곳이 제주도입니다. 신생대 제3기 플라이오세에 탄생한 젊은 땅의 식생과 대기가 보여주는 낯선 풍경 속에서 작가는 기존 자기작업의 온전한 경유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정록은 자연의 원형이 주는 힌트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경외감을 통해 침침한 여명에 생명의 실체를 돋우고 마른 가지에 빛을 틔워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모티브 위에 관습적인 신화구술적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 혹은 초월적 존재와의 영적 교감에서 비롯된 아키타이프를 중첩 시키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관문이자 일종의 균열’을 일으킨 것입니다.
Tree of Life in Island전은 작가 이정록을 6개월간 몰입시킨 제주의 자연에서 시작됩니다. 작가는 바다, 들판, 숲과 오름을 헤매며 ‘생명나무’의 장소를 찾고,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에 연결되어 있는 근원적인 세계를 잇는 영매를 불러내었습니다. 이정록은 Tree of Life가 시작된 2006년 이후의 지난한 작업과정의 오류와 실패를 통해 쌓은 촬영데이터를 무력화시키는 제주도의 자연 앞에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한계를 실험하는 무모한 작업방식에 대한 회의를 질문했을 때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이 작업을 위해 보낼 것이라 했습니다. 혜안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파장을 환기’ 시키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좀 더 오랫동안 우리를 흔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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